/파라그 카나 지음ㆍ이무열 옮김/에코의서재 발행ㆍ664쪽ㆍ2만8,000원
"미국의 속이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다. 21세기의 세계는 이제 미국, 중국, 유럽연합이라는 '뉴 빅3'가 각축ㆍ경합하는 전장으로 변했다."
<제2세계> 의 대전제다. 21세기의 열쇠는 제2세계 국가들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성패의 열쇠를 쥔 곳은 동유럽, 중앙아시아, 남미, 중동, 아시아 등지에서 막강 파워를 쥐고 있는 제2세계 국가들이다." 제2세계>
5개 언어를 구사하는 미국의 국제관계 전문가인 파라그 카나가 최근 2년간 제2세계를 돌아다니며 얻은 생생한 정보를 토대로 독자들을 설득하는 요지다. 그는 복잡함과 예측불가능성으로 특징지워지는 현재의 세계 질서는 세계 권력의 대이동 현상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제2세계 국가들이 뉴 빅3 중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주변 국가들의 행보는 물론 빅 3의 패권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제2세계야말로 세계의 캐스팅보트인 셈이다.
최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내정자가 부시의 독단을 비난하면서 "미국에게 주어진 길은 탈고립주의"라고 천명했을 만큼 세상은 변했다. 이제 미국 일방주의는 물론, 미국에 의한 세계의 진보와 번영이라는 순진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책은 "정치적ㆍ사회적ㆍ환경적으로 인류가 과연 앞으로 100년을 더 버틸 수 있을까?"라고 한 천재 과학자 스티븐 호킹의 회의(561쪽)를 미국의 급격한 위상 변화에 맞춰 재구성한 셈이다.
세계화의 의미도 달라졌다. "과거의 세계화는 미국화와 동의어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의 세계화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소멸을 놀라운 속도로 진행시키고 있다."(32쪽) 저자는 미국이 지배하던 시대가 왜 그리 갑작스레 유럽연합과 중국 등이 합류한 3극 체제로 바뀌게 됐는가를 파고 들어간다.
저자는 먼저 "인구 감소를 겪고 있는 러시아는 영향력 면에서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며 "동유럽이 '유럽연합의 뉴 프런티어'로 부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새 권력지형도 구축에서 심장부 역할을 맡고 있는 지역인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각국의 실속 챙기기 양상은 중국, 카자흐스탄의 실용정책이 웅변한다. 중국의 부상을 가장 절실하게 체감할 수 있는 지역은 동남아 국가들이다. 냉전기에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던 인도네시아까지 '아시아의 문화적 자부심' 등을 내세우며 중국과 방위조약을 체결한 것이 좋은 예다.
나아가 미국의 안마당이던 라틴아메리카도 좌파 정부의 득세, IMF 축출, 중국과의 전략적 동맹 수립 등으로 새 파워게임 국면을 창출했다. 석유로 쌓은 부를 미국에 두지 않고 아랍 세계 안에 확산시키려는 새 아랍주의로 재무장한 중동은 빅3의 결전장이 될 전망이다.
이들 나라가 미국, 중국, EU 중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가 그 지역 주변국가들의 행보는 물론 빅3의 패권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저자의 해박함은 한반도를 비껴가지 않는다. 그는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가 내뿜은) '붉은 열기'의 마법에 빠져든 한국은 미국보다 중국과 보다 긴밀한 유대를 선호한다"(455쪽)며 최근 한국의 변화에서 탈미국ㆍ친중국의 양상을 주목한다. 나아가 "중국과 한국은 곤궁한 북한을 자본주의적으로 식민화하는 데 서로 협력하고 있다"며 "궁핍의 심화 등으로 체제 붕괴 양상을 겪고 있는 북한은 중국과 한국에 의해 핀란드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사회과학 서적을 읽는 즐거움을 재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쟁이 시대의 변천과 함께 부단히 버전업해 가는 상황을 두고 '전쟁은 사랑과 같아서 늘 길을 찾는다'는 극작가 브레히트의 말을 인용하는 등 저자 특유의 기지가 산재해 있다. 브레진스키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이 책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가 마주하게 될 세계의 딜레마들을 대담하게 총괄한 책"이라고 평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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