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영화 '무극' 개봉을 앞두고 중국의 첸카이거(陳凱歌) 감독이 한국을 찾았다. 중국이 막 죽의 장막을 걷어낼 무렵인 1984년 '황토지'로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알린 그는 1993년 장궈룽(張國榮), 궁리(鞏利) 주연의 '패왕별희'로 칸영화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쥔 거장이다.
하지만 장동건의 주연으로 국내에서도 화제와 기대를 모았던 '무극'의 시사회가 끝난 뒤 기자 대부분은 '아니올시다'는 반응을 보였다.
'평생의 라이벌인 장이머우(張藝謨) 따라 하기다'는 미학적인 비판에서부터 '중화주의가 엿보인다'는 정치적 해석까지 '첸카이거가 예전만 못하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특히 영화 속 컴퓨터그래픽의 조악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인터뷰할 때 이를 언급하자 첸카이거는 "중국의 현재 기술로 최선을 다했다. 한국기자의 날카로운 비판 정신 덕분에 한국영화가 발전했나 보다"는 덕담을 가장한 비아냥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를 만난 후 호텔 방을 나오면서 "결국 메이드 인 차이나가 그렇지"라고 뇌까렸다. 미학적인 면은 별도로 치더라도 산업적인 창의력이나 기술력에 있어서는 충무로가 한 수위라는 다소 근거 없는 자부심도 느꼈다.
3년이 흘렀다. 그리고 13일 우위썬(吳宇森) 감독의 '적벽대전2:최후의 결전' 시사회장을 찾았다. 동아시아인 모두의 고전인 '삼국지'의 최대 하이라이트, 천하 삼분의 분수령을 이뤘던 대전투를 담아낸 이 영화를 보고 기가 질렸다.
수백 척의 조조 군함이 불 타오르는 과정이 동공을 맹렬히 공격해 왔다. 1,000명 가량의 엑스트라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전투 장면도 경이로웠다.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았다.
한국과 일본 스태프라는 부속이 쓰였지만 '적벽대전2'은 엄연히 중국산. 그러나 "중국산 제품은 조야하다"는 그 흔한 비판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이제 블록버스터 영화도 중국의 시대가 오는 걸까. 열악한 기술력과 부족한 제작 노하우를 극복한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었다.
'적벽대전2'는 정부의 지시에 따라 군부대가 동원됐다. 엑스트라는 모두 군인이었다. 일사불란한 동원체계와 자본이 만났으니 그 결과물은 뻔하지 않은가. 부질없는 자만심으로 중국영화를 얕봤던 과거를 떠올리면 얼굴이 뜨겁다. 중국영화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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