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50여 권을 포함한 저작이 200여 권을 헤아린다는, 그것을 셈할 시간에 차라리 무언가를 쓰거나 읽는다는, 다산성의 문필가 고은(76) 시인이 저작 목록에 또 두 권의 책을 보탰다. 에세이집 <개념의 숲> (신원문화사 발행)과 평론가 김형수씨가 엮은 그의 시선집 <오십년의 사춘기> (문학동네 발행)다. 오십년의> 개념의>
<개념의 숲> 은 수년 전 프랑스의 한 출판사에서 고은 시인을 포함한 세계의 지식인 20여명에게 250여 개의 개념어를 지정해주고 그 풀이를 요청해와 만들어진, 일종의 '고은 식 개념어 사전'이다. 이 사전에는 고은 시인의 시적 상상력의 토대를 유추할 수 있게 하는 절묘한 비유와 수사의 흔적이 아로새겨져 있다. 개념의>
그는'고독은 인간에게 남겨진 유일한 육친이다'(고독),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육체이다. 그러나 부상 당한 육체이다'(혼),'이것은 인간의 자(尺)이다'(죄책감),'나는 말한다. 환상은 내 반려자라고'(환상2)와 같이 인생과 예술에 대한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가, '소수 민족의 비애가 있는 한 세계는 비애의 행성이다'(마이너리티), '신경증은 문명의 선물이다/ 현대인 전체/ 네티즌 전체가 신경증의 친구이다'(신경증),'서구인에게 세계는 서구였고, 서구의 부록인 오리엔트가 있다'(서구)와 같이 역사와 문명에 대한 통찰을 보이기도 한다. 한편으로'어린 시절 먼 길의 가로수 포플러나무, 또는 겨울밤 별들'(영원), '두고온 꽃'(순결)처럼 메마른 감성을 적셔주는 낭만적 아포리즘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청탁을 받은 뒤 일필휘지로 달려 이 책을 썼다는 시인은 "지금 쓰면 또 다를 것이다. 멋대로 적어봤다"고 했는데, 그 같은 겸사에도 불구하고 그의 에세이집은 멋대로 쓴다는 것 혹은 빨리 쓴다는 것이 대충 쓴다는 것과 등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책에 실린'꽃대궐' '어느 부부'등 지난해 9월 그가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열었던 그림전시회에 내놓았던 작품 35점도 특별한 볼거리다.
"어떤 텍스트를 선정해도 흐르는 강에서 한 바가지를 퍼오는 격밖에 되지 않는다"는 선자(選者) 김형수씨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고은 시인의 시선집 <오십년의 사춘기> 는 국맛을 보려 할 때는 한 국자로도 충분하다는 옛말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고은 시의 고갱이들을 벼려놓았다. 오십년의>
김씨는 고은 시인의 생애를 세 시기로 나누고 여기에 그의 기념비적 인물시집인 <만인보> 수록작품을 따로 묶어, 4부에 걸쳐 66편의 시를 담았다. '언제나 오는 것은 없고 떠나는 것뿐이다'같은, 불가에 귀의한 20대 젊은 사내의 뼛속깊은 쓸쓸함이 구절마다 스며있는 등단작 '폐결핵'(1958)을 비롯해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화살')과 같이 강렬한 현실참여 의지를 드러낸 1970~80년대의 작품들, '소월 형/ 지용 형/ 당신네들 어렴풋이 알았을거요/ 인류 맨 처음의 언어가/ 아아/ 였던 것'('눈 내리는 날')처럼 시인으로 걸어온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는 근작시까지 그의 시력(詩歷) 50년의 전모를 한눈에 톺아볼 만한 시들을 모았다. 만인보>
고은 시인은 <만인보> 완간을 위해 경기 안성 자택에서 시작에 몰두하고 있다. 30권을 목표로 한 이 시집은 현재 26권까지 나왔다. 그는"올해초부터 사람 만나는 것도 사절하고 이 안에만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만인보>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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