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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한반도의 새로운 때

입력
2009.01.19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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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이나 이어졌던 강추위가 갑자기 누그러졌다. 당분간은 비교적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리라는 기상청 예보다. 하기야 한 달만 지나면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다. 올 겨울 추위도 한 고비를 넘겼으니 이제 슬슬 새봄을 얘기해도 되겠다.

우리 경제의 체온이 바닥 모를 영하로 떨어지고 있는 중이니 경제의 봄 얘기는 입에 올릴 상황이 전혀 아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을 전후해 얼어붙기 시작했던 남북관계는 이제 풀릴 때도 됐으니 얘기거리가 된다. 조정기가 필요했든, 서로 길들이기 아니면 버릇 고치기의 기간이었든 1년이면 충분한 시간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영 아니다. 대동강변의 평양은 새해 벽두부터 부산스러운데, 한강변의 서울은 꽁꽁 언 강에서 기다림의 낚시 바늘로 세월을 낚는 중이다. 이런 분위기로는 우수경칩 다 지나고 춘삼월이 와도 남북관계의 얼음은 풀리기 어렵다.

몸 푸는 평양, 기다리는 서울

평양이 날씨도 덜 풀렸는데 때 이르게 연장을 손질하며 부산을 떠는 것은 4년이 될지, 8년이 될지 모를 새 농사철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농사철 부시 농장에서 거둬들인 수확은 풍작은 아니었지만 그만하면 괜찮았다. 핵 불능화 비료를 적절하게 써서 지난 20년 동안 자신들을 짓눌렀던 테러지원국 멍에 해제를 수확했고, 중유 또는 그에 상당하는 요긴한 물품들도 주변 농장들이 도와주는 바람에 꽤 거둬들였다. 부시 농장 사람들이 떠나가면서 무기급 고농축우라늄(HEU)이 어쩌니, 시리아와 핵 협력 증거가 확실하다느니 등의 철 지난 얘기를 하는 것이 성가시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도 영악스러운 평양 농사꾼들이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지난 농사철에 불능화 비료로 쓰다 남은 핵신고 검증체계와 함께 오바마 농장에서 상당히 기름진 비료가 될지도 모른다.

평양 농사꾼들은 오바마 농장 사람들의 후한 인심을 은근히 기대하는 것도 같다. 자신들과 과감하고 직접적인(tough and direct) 거래를 하겠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뭘 뜻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아무렴 깍쟁이 부시 농장 사람들만 못할까 싶은 거다. 부시 농장사람들은 당초에는 평양 농사꾼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통째로 갈아치우겠다고 덤볐다가 뒤늦게 물정을 깨닫고 태도를 바꿨다.

반면 오바마 농장사람들은 처음부터 흥정이 통할 것 같은 태도로 나와 기대 수준을 높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엊그제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핵 폐기에 앞서 관계 정상화'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거' 등의 턱없이 높은 수확 목표량을 제시한 것은 도가 좀 지나쳤다.

정식으로 판을 벌이기에 앞서 최대의 희망사항을 말한 것일 테지만 오바마 농장사람들도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농장의 깐깐한 관리인이 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지명자는 상원 외교위원회 인준청문회에서 핵 폐기 전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는 불가능하고, 북한의 인권문제도 외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상대방 배려와 진정성을 앞세워 백악관을 차지한 오바마가 농장주인이다.

평양 농사꾼들이 성실하고 약속을 잘 지킨다면 적어도 그들의 진심을 액면 그대로 값을 쳐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오바마 농장에서 얻을 수확을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그들 할 나름에 달렸다는 얘기다. 바야흐로 농사가 시작되고 있으니 지켜볼 일이다.

때 놓치는 어리석음 없어야

그런데 이웃 이명박 농장사람들은 지켜보고만 있을 셈인가. 지난 1년 남북관계 농사는 거의 폐농이나 다름 없었다. 1년 동안은 어찌어찌 버텼다 해도 계속 남북관계 농사를 망치면 사단이 난다. 남북관계 농사가 우리네 살림에서 이리저리 영향을 안 미치는 곳이 없는 탓이다. 이명박 농장사람들이 유달리 중시하는 한미관계 농사부터가 꼬이게 된다. 우리 농사일정에 맞춰달라고 오바마 농장사람들에게 매달려 봐야 그들은 그들대로 시간계획이 있으니 선선히 응하겠는가.

한반도에 새로운 때가 닥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를 애써 외면하고 기다리다간 때를 놓친다. 시중(時中), 적절한 때를 알고 맞춰 집중하는 중용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계성 논설위원한반도평화연구소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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