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출근 길에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기가 괴로웠다. 목도리와 장갑, 외투로 찬 바람을 막았지만 어른 체면에 귀마개를 할 수 없어 귀가 떨어져 나갈 듯했다. 할 수 없이 주머니에 넣어 따뜻해진, 장갑 낀 손으로 몇 번이고 두 귀를 싸잡아 비벼야 했다. 체감온도로는 영하 15도 이하라지만 고작 영하 10도 내외의 추위에 쩔쩔매는 모습이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웠다. 그럴 때마다 영하 10도는 예사고, 걸핏하면 영하 15도 밑으로 기온이 떨어져 강물이 꽝꽝 얼어붙었다가 봄이 와야 겨우 풀렸던 어린 시절의 겨울 풍경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추웠다. 주관적 경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인식의 허점 때문에 '옛일'은 객관성이 떨어지기 쉽지만, 추위 얘기만큼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물은 0도에서 얼기 시작하고, 기온이 떨어질수록 더욱 단단한 얼음으로 변한다. 그러니 과거와 현재의 강물만 비교하면 된다. 도시의 하천은 따뜻한 하수와 폐수가 흘러드는 데다 수질오염으로 빙점 자체가 내려갈 수 있어 잣대로 삼기 어렵지만 산골 하천은 그런 염려도 없다. 물론 기상청의 관측 자료를 확인하는 것도 간단하고 확실하다.
■양말과 신발, 옷과 장갑, 목도리 등의 품질을 감안하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진다. 그때는 더러 토끼털 귀마개나 털실로 짠 장갑이나 조끼를 구경하긴 했지만 나일론 양말과 고무신, 합성섬유 옷이 대부분이었다. 캐시미어가 다량 함유된 고급 모제품, 오리나 거위 솜털이 들어간 다운재킷, 고급 모피 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때는 추위에 움츠러들지 않았다. 손발이 얼도록 들과 산을 뛰고, 얼음을 지치고, 연을 날리고, 땔나무를 했다. 날씨는 추웠지만 뛰어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추위를 겁낼 틈이 없었다.
■생활하면서 실제로 느끼는 기온을 '체감온도'라고 한다면, 그때의 체감온도는 한겨울에도 영상이었던 셈이다. 이런 구체적, 주관적 기온감각은 육체활동이나 심리상태에 따라 사람마다 달라서 기상청의 '체감온도' 예보로도 짐작하기 어렵다. '위험'(영하 45도 이하), '경고'(영하 25~45도), '주의'(영하 10~25도), '관심'(영하 10도 이상) 등 4단계인 기상청 체감온도는 기온과 바람, 습도 등 객관적 요인만 고려하기 때문이다. 경제 한파의 객관적 체감온도는 이미 '경고' '위험' 수준이다. 이런 때일수록 주관적 체감온도라도 끌어올려 한파에 맞서야 한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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