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구 지음/푸른역사 발행ㆍ280쪽ㆍ1만6,000원.
조선을 테마로 한 대중역사서의 봇물 속에서, 이 책은 소재의 폭을 좁힘으로써 차별화를 꾀한다. '17세기'와 '지식인'이라는 테두리가 그것이다. 명ㆍ청 교체기의 동아시아 질서 재편에서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을 차례로 겪은 조선의 17세기는, 저자 이경구 한림대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해방 이후 남북한의 반세기만큼이나" 절박한 시대였다.
자연히 이 시기 지식인은 '사회질서 재건의 의무감'을 숙명으로 떠안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학자이자 심각한 정치가이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의 문학가였다"는 것이 그들의 매력이다. 저자가 17세기 지식인의 삶을 엮어 하나의 지도로 그려낸 이유다.
저자는 김장생(1548~1631) 김집(1574~1656) 부자를 시작으로, 김창협(1651~1708) 김창흠(1653~1722) 형제까지 지식인의 계보를 9부로 나눠 엮었다. 사림의 정치 이상을 내세웠으나 그 정책이 뿌리내리기 전 청나라와 사대관계를 맺어야 했던 절망감, 주자학을 중심으로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불태운 열정, 붕당정치의 전성기에 어쩔 수 없었던 환멸감이 지식인들의 이름을 매듭 삼아 이어져 있다. 김육, 송시열, 윤휴, 유형원 등이 겪었던 세월과 고민이 책의 페이지를 채운다.
전거가 되는 문헌의 출처를 꼼꼼히 밝히고 전체 계보 속에 각 인물을 위치시키느라 이 책은 다소 딱딱한 느낌을 준다. 대중교양서로서는 약점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허수하지 않은 역사서를 읽을 때의 단단함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작업을 장막을 걷어내고 진행하는 마술쇼에 비교한다. "익숙한 마술은 보고 난 관객을 허탈하게 만든다.
그러나 장막을 걷고 트릭을 관찰하게 되면, 관객은 마술사의 포로에서 벗어나 유쾌하게 마술을 지배하게 된다. 대중에게 역사를 소개하는 이들은 찬란했던 과거, 흥미로운 소재로 대중을 지배하고픈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대중이 '과정'을 투명하게 지켜보고, 비판적 안목을 기를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유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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