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면 아이를 잃는 일만큼 끝없는 절망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다를 것이 없지만 그 아픔을 표현하는 방식만은 다르다. 안타까운 모성과 부성을 그린 두 편의 영화가 곧 개봉한다.
제목이 뒤바뀐 아이를 뜻하는 '체인질링'(22일 개봉)과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거리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레저베이션 로드'(29일 개봉). 실화인 '체인질링'이 1920년대 미국 사회에 대한 놀라운 발견이라고 한다면, 관객들이 보다 더 공감할 영화는 '레저베이션 로드' 쪽이다.
■ 실화 같은 픽션, 픽션 같은 실화
두 영화 모두 시작은 날벼락 같은 사고다. 1928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싱글 맘인 크리스틴(안젤리나 졸리)의 9살 아들이 혼자 집을 지키다 실종되고('체인질링'), 단란한 저녁을 보낸 뒤 주유소에 정차했다가 앞길에서 난폭운전한 차에 치여 아들이 즉사('레저베이션 로드')한다. 그런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체인질링'보다 더 현실감이 나는 것은 '레저베이션 로드'다.
'레저베이션 로드'가 사고 후 남은 세 식구의 공황 상태와 갈등을 묘사하며 눈물샘을 자극하는 반면, '체인질링'은 엉뚱한 소년을 아들이라며 데려온 경찰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와 어린 소년들을 납치살인한 희대의 연쇄살인사건으로 비화한다.
■ 공권력에 대한 대응 대조적
부모의 상실감 한편에 제도와 공권력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두 영화의 공통점이다. '레저베이션 로드'의 아버지 에단(호아킨 피닉스)은 뺑소니 수사가 한계에 봉착하고 법적 처벌 수준도 미미하다는 사실에 격분한다.
아내조차 "남은 가족을 버리지 말라"고 울부짖을 정도로 그는 범인 찾기에 집착한다. 가해자로 의심되는 차량의 사진을 찍고 총을 구입하는 그의 광적인 집착은 '내 손으로 해결한다'는 아버지의 방식을 보여준다.
'체인질링'은 1920년대 미국의 무능하고 부패한 공권력의 문제에 천착한다. 경찰은 키도 작고 학교 선생님도 몰라보는 아이를 두고 자신들의 실수를 덮기 위해 엄마 크리스틴을 "부양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며 정신병원에 강제수용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지금 시각으로 보면 납득이 안 될 만큼 순응적이다. 결국 시의회 청문회를 통해 사실이 규명되고 시민과 여성의 권리는 한층 강화되지만 크리스틴은 변화의 상징일 뿐 주체가 되지는 않는다.
■ 강한 아버지, 더 강한 어머니
남자라면 사적 처벌을 감행하는 '레저베이션 로드'의 아버지를 강한 남자의 화신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체인질링'은 어쩌면 더 강한 어머니를 그리는지도 모른다.
아들과 함께 연쇄살인범의 소굴에 갇혔다가 도망쳐 5년 만에 집에 돌아온 다른 소년의 증언을 듣고도 아들이 죽었다고 믿기는커녕 "어딘가 살아 있을지 모른다"며 희망을 되살리는 것을 힘이라고 볼 수 있다면 말이다.
이런 면에서 '체인질링'은 78세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절제된 연출의 결실이다. 수시로 주인공이 절규하게 하며 관객의 눈물을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영화 말미에 목놓아 울고 싶게 만든다.
"5년이나 숨어지내다 지금 나타난 이유가 뭐냐"는 경찰에게 돌아온 소년은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아빠도요."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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