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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편되는 세계질서-위기에 기회 있다] 1부 <2> 기로에 선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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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편되는 세계질서-위기에 기회 있다] 1부 <2> 기로에 선 달러

입력
2009.01.1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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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7월15일 오전 10시21분(현지시간) 런던 외환시장. 미 달러화는 1유로당 1.6038달러에 거래되며 또다시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1999년 유로화가 등장한 이래, 한때는 0.9달러를 주고도 1유로를 얻을 수 있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가히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상황.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달러의 추가 약세'를 점치기에 바빴다.

# 2007년과 지난해에 걸쳐 세계 곳곳에서 '더 이상 달러를 받지 않겠다'는 선언이 잇따랐다. 브라질 출신의 수퍼모델 지젤 번천, 인도의 세계적 관광지 타지마할, 석유수출국 이란 등 주체도 다양했다. 이들은 (달러가치 하락으로) 앉은 자리에서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을 더는 견딜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 달러화의 '100년 권좌'가 흔들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달러의 위기는 한 두 번이 아니었고, 위기 때마다 곧잘 이를 극복해 왔지만 이번에는 자못 상황이 심각하다. 위기가 후발주자들의 도전이 아닌, 권좌의 핵심,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달러의 운명을 주시하고 있다.

● 위험자산이냐, 안전자산이냐

최근 몇 년간 점진적인 약세를 보이던 달러는 지난 한 해 역사적인 부침을 거듭했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여파로 유로화 대비 가치가 연일 사상 최저치를 갱신하던 여름까지 달러는 마침내 나락으로 떨어지는가 싶었다.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의 화폐는 대표적인 위험자산으로 여겨지며 한편으론 투기자금의 원자재 행을 부추겨 유가는 한 때 배럴당 150달러를 위협했다.

하지만 위기가 극단으로 치닫자 달러는 오히려 역설적인 강세국면을 맞는다. 언제 누가 무너질 지 모른다는 공포심리와 유럽에도 위기가 본격 전염되는 사태는 '믿을 건 역시 달러뿐' 이라는 극도의 안전자산 선호심리로 바뀌었다. 달러는 불과 몇 달 사이 유로화 대비 30% 가까이 절상됐다.

그러나 역설적인 상황도 잠시. 지난해 12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정책금리를 사상 최저인 제로 수준까지 낮추면서 달러는 최근 다시 약세로 전환되는 분위기다. 잠시 이성을 잃었던 시장이 다시 '빚은 넘치고 이자 매력도 없는 나라'의 현실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 절대권력 1세기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전세계를 호령한 것은 짧게는 60년, 길게는 100년에 이른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혼란을 틈 타 뉴욕이 국제 금융센터로 급부상하면서 달러는 파운드화와 함께 기축통화 반열에 오른다.

달러가 절대권력을 쥔 계기는 44년 브레턴우즈 체제 출범. 두 차례 세계대전 동안 무기 판매로 전세계 금의 70%를 거머쥔 미국은 2차대전 후 전세계 GDP의 50%를 차지하는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달러=금' 시대를 선포한다. '달러를 들고오면 언제든 금으로 바꿔줄 테니 금만큼 안전한 달러를 기준으로 하라'는 자신감이었다.

이후 위기는 수시로 찾아왔지만 한 번 굳어진 달러 패권의 근본은 흔들리지 않았다. 베트남전 후유증과 독일, 일본의 급성장으로 달러 대신 금을 찾는 수요가 급증하자 미국은 '금ㆍ달러 교환 중지'를 선언, 브레턴우즈 체제를 포기한다.

70년대 오일쇼크는 전세계를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옮겨가게 했다. 더 이상 달러는 절대기준이 아니었지만 미국에게는 달러를 계속 찾게 만들 '힘'이 있었다. 막대한 무역적자를 막기 위해 강제로 환율을 조정(85년 플라자합의)하고 강력한 무역장벽(수퍼 301조)을 만들었다.

세계 최고의 자본시장 환경은 해외로 빠져나간 달러가 다시 미국을 찾게 만들었다. 때문에 달러를 많이 갖고 있는 나라(중국, 일본 등)일수록 달러패권 유지를 옹호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됐다.

● 흔들리는 펀더멘털

기축통화의 최대요건은 안정성. 누구나 달러를 원하고 앞으로도 계속 찾을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다. 이런 점에서 달러는 지금도 치명적인 약점을 쌓아가고 있다.

먼저 천문학적 재정적자. 이번 금융위기 해결을 위해 수조 달러를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 현실은 '돈을 찍어 내 빚을 메우는 나라'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개선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상적자(2007년말 현재 GDP의 5.6%)는 '달러가 향후 제 가치를 유지할 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달러의 지위를 위협하는 경쟁자들의 부상도 심상치 않다. 유로화는 경제 및 교역규모나 금융환경 등에서 1세기 만에 나타난 실질적인 경쟁자로 평가받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내부 보고서에서 "향후 국제 통화질서는 달러 절대권력 시대에서 벗어나 이원적 기축통화 체제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 "弗의 시대 계속된다" 반론 팽팽

지난해 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로화가 앞으로 5년 안에 미 달러화를 제치고 기축통화가 될 것'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절대 다수 유럽인은 물론, 미국인의 절반 가량(48%)도 이런 예측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 정서뿐이 아니다. 실제 적지않은 전문가들도 2020~2030년께는 달러의 기축통화 시대가 끝날 것을 점치고 있다.

하지만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달러 시대의 종언'을 얘기하기에는 여전히 때가 이르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재철 수석연구원은 "기축통화는 경제논리로만 정해지는 게 아니다"며 "기축통화 결정 요인의 8할은 해당 통화를 발행하는 나라의 군사ㆍ정치력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및 교역규모나 금융시장 발전정도 같은 경제적 요인보다 오히려 통화의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총체적 국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장 연구원은 "미국이 영토를 침범당한 사례는 진주만 침공, 9ㆍ11 사태가 거의 전부일 정도로 견고함을 자랑한다"며 "이처럼 가장 안전한 나라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군사력이고 이런 힘이 곧 통화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근거는 달러를 대체할 대안 통화들의 한계다. 앞서 설명한 대로, 기축통화가 되려면 경제규모, 통화안정성, 총체적 국력 등 'ABC'를 고루 갖춰야 한다.

현재 유력 대안으로 거론되는 유로화는 단일주권 국가 통화가 아니라는 정치적 약점이, 중국 위안화는 급팽창중인 경제의 덩치에 비해 뒤떨어지는 금융시스템과 사회문화적 후진성이 발목을 잡고 있다.

여기에 과거 달러가 파운드화를 제치고 유일 기축통화가 되는 데 수십년이 걸렸듯 현재 경제주체들의 달러선호 관습이 바뀌는 데도 상당한 기간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많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달러의 절대권위는 앞으로 분명 약해지겠지만 적어도 달러가 우위에 서는 통화질서는 대안통화들이 전면에 나선 이후에도 최소 수십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 '포스트 달러 시대' 노리는 통화들

'포스트 달러 시대' 패권을 노리는 제1 주자는 유로화다. 99년 출범 이후 지속적인 가입국 확대로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적 덩치와 자체 유통시장을 갖췄다.

미국보다는 유럽 자본을 선호하는 중동 오일머니의 대량 유입으로 향후 발전 잠재력도 높다. 특히 최근 파운드화 약세로 고심하는 영국이 유로화 사용권에 합류할 경우,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단일 감독규제기관이 없는 제도적 한계와 각국의 이해가 상충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통일성 결여는 향후 유로화를 유럽지역의 맹주로 자리하기까지 그 지위 가능성 여부를 제약할 수 있는 요소다.

이미 세계 4위의 경제규모를 갖춘 중국은 2030년께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무한한 잠재력과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는 통화가치 향상에 있어 유로화보다 훨씬 유리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 최근 홍콩 등과 달러 대신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고 한국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확대하는 등 국제통화로서의 준비작업도 진행중이다. 하지만 후진적인 각종 정치ㆍ경제ㆍ금융 시스템은 아직 넘기 힘든 벽이다.

우수한 상품 경쟁력이나 막대한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 등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일본 엔화도 잠재후보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낙후된 금융시장이나 폐쇄적 문화 등은 강점 이상의 뚜렷한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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