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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전문학교서 만난 2009 희망 지킴이들/ 뚝딱뚝딱 드르륵 "제2인생 설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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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전문학교서 만난 2009 희망 지킴이들/ 뚝딱뚝딱 드르륵 "제2인생 설레요"

입력
2009.01.1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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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쾅쿵쾅 뚝딱뚝딱', '드르륵~ 드르륵~'

열어 젖힌 자동차 보닛 아래 머리를 숙이고 한창 자동차 수리에 열중하고 있는 정영삼(38)씨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돼 있다. 너덜너덜해진 작업용 장갑을 벗으며 내민 손은 상처 투성이에 새까만 기름때로 얼룩져 있다. "요새 방학이긴 한데 쉴 수가 있어야죠. 얼마 후에 산업기사 시험도 봐야 하고…." 멋쩍어 하는 정씨의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이 번진다.

2009 기축년(己丑年)을 앞두고 세밑 한파가 기승을 부린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 군포시에 자리잡은 서울시립 엘림 직업전문학교에는 정씨처럼 삶의 바닥을 박차고 올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정씨가 이 곳을 찾은 것은 지난해 3월. 그 전까지는 서울 대림동에서 주점을 운영하며 남 부럽지 않게 살았다. 그러나 10년 전 외환위기 때도 힘겹게 버텨내며 지켜온 가게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2007년 12월, 이 날처럼 칼바람이 매섭게 불던 날이었다.

군 제대 직후인 1994년 3월 고향인 경기 동두천을 떠나, 주점 종업원으로 시작한 서울살이 5년 만에 인수한 가게였다. 경기침체가 길어지며 손님들 발길은 점점 줄고 드는 비용은 늘어나니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다.

"가게에서 먹고 자며 제 젊음과 노력을 바쳐 마련한 가게인데… 눈 앞이 깜깜했죠." 술장사 하려니 당시 열 살이던 아들 보기에도 민망하던 차에 "차라리 잘 됐다"고 스스로 위안도 해 봤지만, 당장 세 식구 먹고 살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특히 4년간 동거 끝에 늦게 결혼식을 올린 아내에 대한 미안함은 씻을 길이 없었다.

"처음에는 막막하기만 하고 술에 취하지 않고는 하루도 버틸 수 없었죠. 그러다 이러다간 큰 일 나겠다 싶더라고요." 마음을 다시 다잡은 그에게 한 선배가 직업전문학교에 대해 일러줬다. 무상교육에 취업까지 알선해준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곧바로 자동차과에 입학했다. 울음을 삼키며 가게를 접은 지 3개월 만이었다.

그 후 정씨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자동차 정비기능사와 검사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올 2월이면 졸업과 동시에 자동차서비스센터에 취직한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더니, 새해 첫 머리에 새 삶의 첫 발을 내딛는 것이다.

그는 "2008년 시작은 정말 안 좋았는데, 2009년은 시작부터 좋다"며 "희망이 있고 없음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대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직업학교 조리과 실습실에서는 장호철(35)씨가 쇠고기덮밥 만들기에 한창이다. 3개월 전 취득한 일식조리기능사 자격증 실기시험에 출제돼 합격점을 받은 음식이지만, 그는 재료들을 바꿔가며 자신만의 음식을 구상하고 있다.

장씨의 꿈은 '아토피 치료 음식점'을 내는 것이다. 자신이 아토피를 앓아 약보다는 음식과 잠자리 등 생활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는 독창적인 레시피로 같은 처지 사람들이 병을 치유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단다.

이런 목표를 정하기까지 시행착오가 따랐다. 1999년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 무역학을 전공하며 평범한 회사원을 꿈꿨다. 그러나 '88만원 세대'가 졸업 후 맞닥뜨린 세상은 팍팍했다. 대졸 간판이 무색하게 호프집 종업원 등으로 근근히 살아야 했다.

장씨는 고민 끝에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요리에 눈을 돌렸고,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직업학교를 찾았다. "그냥 요리사가 아니라 좀 색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만큼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졸업하면 일단 음식점을 내려고 해요. 경제난이 심해 어렵긴 하겠지만, 한 발 한 발 짚어가다 보면 길이 열리고 언젠가 꿈도 이뤄지겠지요."

가구디자인과 이승원(26)씨의 새해맞이도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는 2월 졸업 후 서울 인사동의 개인공방에서 일 할 예정이다.

이씨의 지난 날도 순탄치 못했다. 고교 때는 학교 간 날과 빼먹은 날이 같을 만큼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대학은 가서 뭐하냐'며 바로 취직했다가 또래들과 다른 삶이 또 불안해져 2003년 뒤늦게 대학에 갔다.

하지만 방황은 끝나지 않았다. 전공(기계과)이 적성에 맞지 않아 2007년 군 제대와 함께 자퇴한 뒤 PC방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하며 귀한 젊음을 하루하루 허비했다.

그러다 친구 소개로 DIY 가구제작 일을 처음 접했다. 별 기대 없이 시작한 아르바이트였으나 어느 날부턴가 가구를 만들고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특히 고전 가구에 관심이 많아 전문적인 배움을 위해 직업학교를 찾았다.

그는 "손을 놀릴수록 그냥 나무가 가구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구 만드는 일이 참 정직한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고전가구의 명인 격인 국내 최고의 소목장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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