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람이 칼날처럼 많이 예리해졌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움츠리고 걷는 사람들이 한결 많아진 것 같다. 평소에 꾸부정하게 걷고 다닌다고 한 소리 듣는 나도 어깨가 더 좁아지게 되었는데, 딱한 표정을 짓던 아내가 "그러지 말고 목도리를 해!" 라고 훈수를 두었다. 약간 짜증이 묻어있는 것을 보니 자기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 것에 대한 섭섭함도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처음으로 목도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옷장 걸이에서 아내가 직접 골라낸 것인데, 외국에서 생활할 때 사 두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것이었다. 원래부터 몸에다 번잡하게 더하는 것을 싫어해서 장갑도 껴 본적이 없던 내가 목도리 하나 제대로 두를 리가 없었다.
결국 보다 못한 아내가 퉁을 주며 직접 목에다 둘러주었는데, 목과 아래턱까지 감싸도록 둘러주는 것을 보니 모양새보다는 몸을 실용적으로 보호하는 방법 같았다. 실제로 집을 나와 지하철 역사를 향해 걷는 동안 평소보다 몸에 한기가 훨씬 덜 느껴졌다.
그리고 직접 목도리를 하고 보니 다른 사람들의 목도리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니트나 모피와 같은 소재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앞으로 착실하게 겨울을 낼 궁리에 목도리 하는 방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코트 속으로 목도리의 양 끝을 점잖게 내려뜨리고, 여자들은 목 주위로 목도리를 두른 후 양 끝을 매거나 슬쩍 감추어서 마무리를 하였다.
그 중의 일부 여성들은 색상이 다른 두세 개의 목도리를 겹쳐 둘러서 멋을 내기도 하였다. 문득 '치마가 너무 짧아서 춥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나처럼 목도리를 함으로써 몸 전체를 추위로부터 보호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패션으로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여자들에게 대단히 실용적인 지혜였음을 알게 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체의 여러 부분 중에서 겨우 목을 감싼 것뿐인데도 추위에 대한 체감도가 현격히 낮아지는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목이 유달리 추위에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신진대사의 중심 축인 상체와 가깝기 때문인지 정말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한 군데만 잘 감싸면 온 몸으로 파고드는 칼날과 같은 추위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굉장한 발견이었다. 왜냐하면 세상사에도 깊이 통하는 이치일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정한 조직에 소속되어 일을 하면서 관련된 주변사람이나 맡고 있는 여러 가지 일 때문에 주저앉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심지어는 인생 전체가 막막해지는 상실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한 겨울의 목도리'를 떠올리면 되지 않을까 싶다. 관련된 모든 사람이나 내가 맡고 있는 모든 일에 열중하지 말고, 문제가 되고 있는 사람과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이나 핵심적인 사항의 일 처리에만 집중하면 나머지도 잘 풀려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한번쯤 가져볼 만한 것 같다.
박물관 계단에서 '거울 못'의 한기를 듬뿍 담은 바람을 맞아 목도리를 한 번 더 추스르면서 나름대로의 목도리론을 정리해 보았다.
유병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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