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
매를 맞고 자란 나무가 있다
부지깽이도 파리채도 아닌 떡메로
작신작신 두들겨 맞으며
한 세월 건너온 나무가 있다
뒤통수가 얼얼할 때까지
눈알이 쏙 빠질 때까지
흠씬 두들겨 맞던 시절 건너온
상수리나무가 있다
전주 완산골 처마 낮은 한옥마을,
야트막한 오목대 산기슭에 오르면 밑동에
떡메 자국 선명한 상수리나무를 만날 수 있다
고픈 배 움켜쥐고 건너온 가까운 옛날,
떡메에 떨어진 상수리나무로 묵을 쑤어
거른 끼니를 겨우겨우 넘길 수 있었다 한다
몸에 덕지덕지 들어앉은 딱지가 여태 붙어 있는
밑동 굵은 상수리나무가 울울창창한 그곳은
나라를 절뚝이게 하려고 왜놈들이
치명자산의 혈을 철길로 끊어놓은 시린 산자락이기도 하다
마을 가까운 나무들은 대개 상처가 많다. 높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서 숨어살면 사람들 손을 타는 성가신 일들이야 쉬 면할 수 있으련만 굳이 야트막한 산기슭에 내려와 이웃해서 살다보니 몸 성한 데가 없는 것이다.
시 속의 상수리나무도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 시달리다 보니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이 상처를 통해 사람들은 주린 배를 달랠 수 있었다. 그래서 메는 메로되 찰진 '떡메'다. 지금도 몸에 들러붙은 딱지가 그대로 남아 있는 상수리나무는 이 땅의 어두운 역사까지 쓰다듬고 달래는 숲이 되었다.
나도 한 여자를 잊지 못하고 나무 수피에 그녀의 이름을 파 넣으며 아픔을 견딘 적이 있거니와, 모든 사랑은 이렇게 제 안을 파고든 상처를 품고 푸르다. 그러니 내게 날아오는 메를 어떻게 '떡메'로 만들 것인가. '창상(創傷)'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상처와 창조는 본디 한 뿌리이므로.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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