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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통계의 오류, 집계의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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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통계의 오류, 집계의 과장

입력
2009.01.1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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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이맘때 당선인 신분으로 대한상공회의소 신년 인사회에 참석했다. 재계에 규제 완화를 비롯한 갖가지 친기업적 정책 추진을 약속하며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요청하던 이 대통령은 인사말 말미에 돌연 "숫자만 왔다갔다 하는 건지, 정말 많이 할 건지 알아서 하시리라 본다"고 묘한 말을 했다. 들뜬 분위기 속에서도 눈치 빠른 사람들은 그 말이 바로 이틀 전 30대 그룹의 투자규모가 전년보다 19% 증가한 9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경련의 발표를 겨냥한 것임을 금방 이해했다.

조 단위 메가 프로젝트 남발

이 대통령으로선 취임선물 같은 이 발표가 무척 고마웠을 것이다. 반면 정권이 바뀌었다고 기업들이 돌연 투자액을 20%나 늘리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더구나 과거 정권 교체기마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 내용을 보면 연례 시설 보수나 이미 착공한 공사를 포함시키는 등의 겉치레가 많거나 실무 검토단계에서 추가투자 계획이 백지화되는 것을 CEO시절 많이 봐왔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윗돌 빼다 아랫돌 괴는 식으로 숫자놀음이나 뻥튀기 하지 말고 진정 실효성 있는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나서달라는 독려와 경고를 까칠하게 전한 셈이다.

그로부터 1년 후인 지난 주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녹색뉴딜사업'을 보고 받고 확정했다. 2012년까지 9개 핵심사업과 27개 연계사업등 36개 사업에 50조원을 투입해 일자리 96만개를 만드는 메가 프로젝트다. 그러자 각 부문에서 즉각 의문이 제기됐다. 대부분 기존에 발표한 사업의 진열대와 포장만 바꿔놓은 프로젝트의 비전과 성격을 따지는 비판은 제쳐두더라도, 도대체 어디서 그 많은 돈을 조달하고 또 어떻게 100만개에 가까운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 답변은 옹색하기 그지없다. "구체적 사업이 확정되는 대로 소요 재원을 연차적으로 예산에 반영하겠다"는 말 뿐이다. 또 일자리 숫자는 한국은행이 만든 '2005년 산업연관표 부속 고용표'의 취업유발계수를 적용해 산출했다고 한다. 예컨대 건설업의 경우 취업유발계수가 10억원 당 16.6이니 4대강 살리기에 11조원(설계 및 보상비 제외)을 투입하면 단순계산으로 18.9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식이다.

일자리의 질과 내용에 대한 고려는 아예 없고 건설시장이 노동절약형으로 급변한 추세도 거의 반영하지 않았다.

이런 보고를 받고 이 대통령이 따끔하게 질책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1년 전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얘기다. 누구보다도 관료들의 안이한 공복의식과 탁상행정 타성을 질타하고 현장주의와 실행력을 강조해온 이 대통령이기에 하는 말이다.

이 대통령이 변한 것일까. 혹은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말처럼 이 대통령 역시 '관료들의 엄청난 경험과 지식에 설득 당해' 보고를 믿기로 한 것일까. 아니면 어차피 헤쳐나가기 힘든 위기국면이니 국민들이 꿈이라도 꾸게 해주려는 걸까. 언제부터인가 조 단위의 메가 프로젝트 사업이 검증작업 없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 '금융ㆍ실물 위기 극복' '일자리 창출'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재탕 삼탕 또는 짜깁기라도 모두 무사통과다. 어느 것이 새 사업이고 무엇이 우려먹기인지 챙기는 사람조차 없다.

실행력ㆍ효율성 점검 도외시

녹색뉴딜 이전에 나온 지역경제 활성화대책은 30개 대규모 SOC 사업을 중심으로 2013년까지 100조원을 투입키로 했고 올해 예산적자 규모는 슬그머니 24조원까지 늘어났다. 연일 수십조원을 중소기업과 서민 지원에 투입한다는데, 시중엔 돈이 말랐다. 각 부처가 청와대에 보고한 신규 일자리 계획을 모두 합하면 43만개에 이르고 간접 고용창출까지 합하면 100만개를 상회해 전체 실업자 75만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청년 인턴제 확대니 글로벌 청년리더 10만명 양성 프로그램은 속빈 강정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공직사회가 통계의 오류에 빠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이 정부는 무조건 메가급으로 포장하는 집계의 과장에 빠져 있다. '이메가(2MB) 정부'라는 비웃음을 피하려면 기가급의 실행력이 따라야 한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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