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힘쓰는 일을 좋아하는 소녀가 있었다. 두 살 위인 오빠가 있었지만, 집안에서 무거운 물건은 도맡아 들었고, 취미는 팔굽혀펴기와 윗몸 일으키기였다. 또 초등학교 4,5학년 땐 태권도를 배워 중학교 1학년 때 2품에 올랐다.
그 무렵 힘쓸 곳만 찾아 다니던 소녀는 부천여중 교내대회로 열린 '역기들기대회'에 참가했다. 32.5㎏을 들어 2,3학년 언니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 그로부터 6년 후, 소녀는 '한국 역도 최고의 유망주'라는 타이틀을 안고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
'경량급의 장미란' 문유라(19ㆍ경기도체육회)의 얘기다. 2007년 10월, 슬럼프로 국가대표에서 물러났던 여자역도 63㎏급의 문유라는 1년3개월여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지난 7일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목표는 오는 11월 고양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위 이내에 입상하는 것. 올해 우리 나이로 스무 살이 된 문유라는 "경기도체육회에 입단했고, 얼마 뒤면 경희대 09학번으로 입학식을 갖는다.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면서 "20대에 발을 들인 올해 꼭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 이상을 따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문유라가 그동안 밟아온 길을 돌아보면, '넘버 3' 진입은 결코 꿈이 아니다. "사내아이도 아니고 무슨 역도냐"는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바벨을 잡은 문유라. 그는 이상적인 체격(157㎝ 63㎏)과 타고난 힘으로 출전하는 대회마다 메달을 목에 걸었다.
중2이던 2004년, 소년체전에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따내면서 이름을 알리더니 이듬해 전국중등부대회에서는 중등부 신기록을 3개나 작성했다.
세계 무대에서도 문유라는 두각을 나타냈다. 경기체고 2학년이던 2007년 세계주니어대회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수확해 국제역도연맹(IWF) 58㎏급 세계랭킹에서 14위에 올랐다.
이 같은 화려한 이력 때문에 대한역도연맹은 일찌감치 문유라를 '제2의 장미란'으로 '찜'했다. 문유라 역시 장미란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지난해 8월 전국체전을 준비하며 동료들과 함께 장미란의 금메달 장면을 지켜본 문유라는 머리 속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을 겨냥했다.
"큰 무대에서 떨지 않고 세계기록을 무더기로 수립하는 언니를 보면서 입이 쩍 벌어지더라고요. 물론 '4년 뒤엔 내가 주인공이다'고 마음 속으로 각오를 다졌죠." 문유라는 두 달 뒤 전국체전에서 3관왕에 올랐다.
화려한 안경테와 멋들어진 귀고리, 그리고 틈틈이 가수 비의 '레이니즘' 안무를 연습하는, 또래들과 다름없는 발랄한 스무 살. 하지만 문유라에겐 뚜렷한 목표가 있다. 현재 개인기록(인상 101㎏, 용상 122㎏)을 11월 세계선수권까지 인상 105㎏, 용상 135㎏으로 늘리는 것.
"갈 길이 멀지만, 우선 올해 세계선수권부터 차근차근 준비할래요. 한 계단씩 오르다 보면 머잖아 장미란 언니처럼 올림픽에서 만세 부를 날이 오지 않을까요?"
양준호 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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