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희 지음/민음사 발행ㆍ252쪽ㆍ1만1,000원
소설가 한정희(59ㆍ사진)씨의 세번째 소설집 <브리지 파트너> 에는 타인과의 소통에 실패한 이들의 절망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중년 남녀들의 허무감이 아로새겨져 있다. 브리지>
이런 회색빛 감정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분광된다. 수록작에는 게임에 빠져들며 이런 절망감에서 위무받으려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어린 시절 피아노 신동 소리를 들었으나 이제는 싸구려 코미디클럽의 반주자로 생계를 유지하는 피아니스트 남성과 첫사랑을 찾아 영국으로 떠난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성이 브리지 게임(4명이 2팀으로 나뉘어 진행하는 사교 목적의 카드게임)의 파트너로 등장하는 표제작을 필두로, 외교관인 남편이 임지를 떠날 때마다 사들인 고가의 물건 때문에 빚에 허덕이게 되자 이를 잊어버리기 위해 브리지 게임에 뛰어드는 중년여성이 등장하는 '브리지 클럽', 부유한 사채업자의 딸과 결혼했으나 아내가 속한 계층에 어울리지 못하자 도박사가 되는 남성이 주인공인 '유희' 등이 모두 이런 맥락의 작품이다. 한편으로는 '웃으면서 죽는 법'처럼 알 수 없는 막막함에 자살이라는 극단적 유혹과 싸우는 중년의 중산층 여성이 등장하기도 한다.
소통 부재로 인한 절망감, 혹은 중년의 허무감은 낯설지 않은 소재이지만 한시의 소설이 진부하지 않은 것은 독자들의 가슴을 무참하게 만드는 섬세한 심리 묘사에 기인한다.
죽을 궁리에 몰두하고 있는 여주인공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며 던지는 "마침내 더 이상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신과 밀고 당기기를 할 수 없는 선에 이르렀을 때, 인간의 긍지를 잃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란 말인가" 같은 탄식이나, "미래를 향한 열망을 품는 것보다도 불안을 견딘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지 그는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도박에 빠져든 피아니스트의 절절한 심정을 그려내는 작가적 역량은 호소력이 있다.
한씨는 1989년 등단한 뒤 소설집 <불타는 폐선> (1993)과 <유리집> (2000)을 낸 과작의 작가. 그는 실제로 10년 이상 브리지 게임에 빠졌던 '고수'이기도 하다. 지금은 게임과 절연했다는 한씨는 "소통을 원하지만 소통이 불가능한 관계의 절망감이 요즘 특히 민감하게 받아들여진다"며 "이런 감정에서 탈출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장편소설로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유리집> 불타는>
이왕구 기자 fab4@hk.co.kr
사진=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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