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짜리 하나 팔아서 1,000원 남기겠다는 틀에 박힌 생각은 버려라. 상품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
가히 춘추전국시대다. 매일 3,000여 곳이 새롭게 등장하고, 소리없이 사라지는 건 셀 수도 없단다. 한 업체(G마켓)의 사정이 이럴진대 전체 업종(인터넷쇼핑몰)의 분위기는 굳이 따질 필요도 없겠다. 매장도 없이 시공을 초월해 마음껏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은 장미처럼 치명적인 가시를 품었다. 진입은 쉽지만 무턱대고 나섰다간 단 하나의 상품도 팔지 못하고 죽어나가기 일쑤라는 것.
이 무한경쟁의 전장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만났다. G마켓의 파티의류전문 쇼핑몰 '세븐티에비뉴' 운영자 이은경(38) 이지연(32) 한수정(32)씨. 이들은 오픈(2007년 9월) 이후 4일간 파리만 날리다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 G마켓에서 판매건수로 매기는 등급이 삽시간에 '일반→우수→파워' 딜러로 껑충 뛰어올랐다. 파워 딜러는 G마켓 전체 쇼핑몰 운영자의 10%에 해당하는 영예다. 이들의 생존전략이 궁금했다.
"남들과 달리, 그리고 거꾸로 가라"
지난해 12월24일 서울 동대문패션상가 근처 20평 남짓한 사무실. 스튜디오, 배송물품 보관, 재고창고 등을 겸하는 터라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수북이 쌓인 의류 점검에 배송상황을 살피느라 손 놀릴 틈도 없긴 마찬가지. 성탄전야의 설레임은 진작 반납한 듯 했다. 배달할 상품을 챙기던 이은경씨는 "하루 택배 200건은 거뜬하다"고 했다. '일반 의류도 아닌 파티의상이 저렇게 많이 나가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시작이 그랬던 건 아니다. 지연, 수정씨는 원래 여성의류 개인 쇼핑몰을 따로 운영했다. "처음에는 유행하는 옷, 많이 팔리는 옷, 예쁜 옷만 팔면 되는 줄 알았죠. 그런데 출혈경쟁이 심하다 보니 팔수록 손해인 거에요."(지연) "보통 3만원짜리 옷을 5만원에 팔면 2만원이 남아야 하는데, 임대료 수수료 재고비용 떼고 나니 남는 게 없어요. 옷은 하루에 고작 서너 벌 팔리는데…."(수정) 결국 둘은 500만~1,000만원을 고스란히 날리고 쇼핑몰을 접었다.
그러나 꿈까지 접은 건 아니었다. 사이버 상거래만큼 쉽고 저렴하게 창업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으니까. 셋은 각각 절치부심 하던 중 우연히 인터넷쇼핑몰 관련 세미나에서 만나 의기투합했다. 든든한 동료가 생기니 아픈 실패는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
반년이나 머리를 맞댄 끝에 내린 결론은 '파티의류'라는 아이템이었다. 해외명품브랜드 상품기획자(MD)로 일했던 은경씨의 역할이 컸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에는 파티의류 전문매장이 굉장히 많았던 해외출장 기억이 떠올랐죠." 당시 국내에 파티문화가 자리잡아가던 분위기도 이들이 의견을 모으는데 한몫 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매출은 1년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 월 매출액은 비공개지만 웬만한 직장인의 연봉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상상을 초월한다. 따지고 보면 이들의 생존전략 1번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틈새 공략'이었던 셈이다.
"소비자의 입맛을 우리 입맛에 맞추자"는 원칙도 세웠다. 보통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는 게 대세인데 이들은 '거꾸로' 갔다. "유행하는 옷은 아무나 팔 수 있고 가격경쟁이 치열하지만, 높은 품질로 자신 있는 상품을 내놓으면 사람들이 저절로 찾아 온다"는 이치를 터득한 덕이다. 고객의 70%가 재구매를 택할 만큼 이들의 '거꾸로 전략'도 먹혀 들었다.
"계산기를 잘 두드리는 건" 기본이다. 옷 한 벌 팔아 얼마를 남기기 보다 철저한 사전 조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조사가 부실하면 자칫 쌈짓돈이 모두 소진될 수도 있다고 했다. 특히 인터넷거래의 특성도 잘 헤아려야 한다. 판매대금 수령은 월말(카드결제)이나 1~2주가 걸리기(현금결제) 때문이다. 사정을 잘 몰라 자금압박에 시달렸던 경험에서 배운 교훈이다.
"그 이상한 옷을 누가 입냐?"
사실 마음고생도 많았다. "아니, 너도 입지않는 화려한 옷(파티의상)을 누구한테 팔겠다고 그러니", "멀쩡히 직장 때려치우고 밤낮 고생이니", "얇은 천 조각과 반짝거리는 구슬이 수도 없이 달린 게 옷이니" 등 가족들의 걱정은 그래도 양반이다.
동대문 도매 상인들의 강한 텃세에 마음이 한없이 시렸다. 20년 넘게 잔뼈가 굵은 상인들은 이미 굵직굵직한 판매업체와 계약을 맺은 상태라 햇병아리 같은 이들의 요구(옷 제작)를 외면했다. "원하는 디자인을 들고 가면 '모르면 시작도 하지 말라'는 구박을 대놓고 할 정도였어요."(은경)
반년 만에 꿈에 그리던 첫 거래를 텄지만 이번엔 경쟁업체라는 복병을 만났다. 새로 생긴 경쟁업체가 값을 더 쳐준다는 소리에 애써 뚫은 거래가 갑자기 끊기기도 했던 것. 인터넷쇼핑몰은 원체 경쟁이 치열한 터라 상도덕을 바랄 수도 없었다. 심지어 사나흘간 고생해 찍은 모델 사진을 도용 당하기도 했다.
그 때마다 셋은 이를 꽉 물고, 더 차별화한 상품을 찾아 나섰다. 하루에도 수십 번 동대문패션상가를 들락거리고, 해외 자료와 패션 잡지를 밤새도록 통독했다. 열흘에 한 번씩 신상품 촬영작업을 진행하고, 매일 4~10개 가량 신제품을 선보였다. 주문확인, 거래처 관리 및 개발, 신상품 조사, 촬영, 품질검사, 배송준비, 고객관리까지 동업자 3명은 24시간 깨어있어야 했다.
그래도 행복하단다. "단골 고객이 생기고 재구매율이 높아질 때마다 저희의 희망도 커지니까요."(수정) 희망이 뭘까. 셋은 "지금은 인터넷으로만 접할 수 있지만 이를 발판 삼아 하나의 브랜드로 개발할 생각이고,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해외에 매장도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직 머나먼 꿈처럼 들리지만 그들의 목소리만큼은 당당하고 또렷했다.
강지원 기자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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