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의 어느 날, 뉴스에서 흘러 나온 '팔미도'란 단어가 귓전을 스쳤다. 뉴스는 인천시가 1월 1일 그 섬에서 해맞이 행사를 연다고 했다. 2009년부터 팔미도가 일반에 개방된다는 소리에 귀가 쫑긋해졌다.
팔미도가 어떤 섬인가? 지도를 펼쳐 놓고 팔미도를 찾아보면 섬은 주변의 영종도 무의도 대부도 등에 비해 크기는 아주 보잘 것 없다. 하지만 영종도와 대부도 사이 인천으로 들어가는 뱃길 정중앙에 자리잡은 그 위치가 절묘하다. 인천이 서울의 관문이었다면 인천항 길목의 한가운데는 바로 팔미도가 있다.
팔미도에 등대가 들어선 것은 1903년이다. 국내 첫 등대다. 대한제국 시기 일본은 이곳을 서울 진출의 필수 거점으로 삼아 등대를 설치하고 한반도 침탈에 나섰다. 우리 바다의 의미있는 등대들은 팔미도 등대 이후 1910년대에 대부분 완성됐다.
월미도(1903) 백암(1903) 북장사서(1903) 부도(1904) 제뢰(1905) 영도(1906) 우도(1906) 울기(1906) 옹도(1907) 호미곶(1908) 소청도(1908) 어청도(1912) 등이다. 이런 초기의 등대들은 제국주의의 뱃길을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팔미도는 한국전쟁 때 중요한 전적지로 부상한다. 인천상륙작전의 시작점이 바로 팔미도다. 대북첩보부대인 켈로부대 대원들이 발동선을 타고 잠입, 등대에 불을 밝힘으로써 전쟁의 판도를 바꾼 맥아더 장군의 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다.
팔미도 등대가 불을 밝힌 이후 섬은 등대지기와 군인들만 거주할 수 있었다. 100년 이상 일반인의 출입을 거부했던, 국내 첫 등대섬이란 역사의 섬이 이제 열리는 것이다.
1일 새벽 짙은 어둠 속 연안부두를 출발한 페리가 섬에 닿기까지 걸린 시간은 50분이다. 배에서 내린 1,000여 명의 신년 해맞이 객들이 등대를 향해 줄지어 올랐다. 팔미도 등대는 106살이다. 크기만 보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2,3층 높이의 아담한 헛간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여기서 밝혀진 빛은 100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근대를 인도하고 현대를 밝혀 왔다.
하얀 등대의 외벽은 꺼칠했다. 풍랑과 고요의 반복 속 켜켜이 쌓인 고독의 덩어리들이다. 이 등대는 더 이상 빛을 내지 않는다. 2003년 바로 옆에 늘씬하고 위성항법시스템까지 갖춘 첨단 등대가 들어선 뒤로 모든 임무를 넘겨주고 그저 묵묵히 바다만 바라보고 서 있다.
등대보다 더 큰 통신탑과 어지러운 케이블로 주변은 다소 어수선하지만, 등대에서의 조망은 여전히 장쾌하다. 등대는 바다에서 뭍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자 바다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새 등대의 전망대에서 인파에 파묻힌 채 새해의 태양이 떠오르길 기다렸다. 바다 건너 멀리 뭍 위로 안개 구름이 낮게 드리웠다. 과연 해가 제대로 뜰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불안함도 잠시, 빨간 초승달 모양의 빛이 구름 속에서 번지더니 금세 동그란 윤곽을 그리며 붉은 태양이 나왔다. 구름 위로 솟지 않고 구름 속에서 튀어나오듯 새해 첫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끄럽던 사람들은 모두 조용해졌고 "아하" "아하" 짧은 탄성만을 토해냈다. 무겁게 깔린 침묵은 첫 태양에 간절한 소망을 기원하기 때문일 것. 365일 뜨는 태양이건만 새해 첫 날의 일출은 그 많은 소원을 담아야 하는 특별함 때문인지 더욱 장엄하다.
새 등대 옆으로 산책로가 이어졌다. 섬을 한 바퀴 돌아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100년 넘게 일반인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이라 자연은 원시와 가까웠다. 헐벗은 나무만으로도 숲은 빽빽했다.
선착장으로 내려서는 길. 갯바위 너머로 웅장한 인천대교가 들어왔다. 다리의 양쪽 끝이 보이질 않는다. 국내 최장의 교량이란다. 얼마나 긴 걸까. 사람의 힘이 위대하다 못해 무섭게 느껴졌다.
팔미도 관광은 17일부터 본격 시작된다. 여객선 요금은 어른 2만2,000원, 어린이(만 12세 이하) 1만1,000원이다. 관광객은 팔미도에서 숙박과 낚시, 동식물 채취 등을 할 수 없으며, 식수는 별도로 지참해야 한다. 팔미도에 머무는 시간은 1시간 가량이다.
현대마린개발(1633-0513)의 용주 2호(199톤)는 최대 307명의 승객을 태우고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 두 차례 연안부두를 출발해 팔미도까지 운항한다.
■ 국내 1호·첫 콘크리트 건물… 20세기초 선진건축 집약체 '팔미도 등대'
팔미도 등대는 한국 해양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국내 제1호 등대이면서 지금은 너무나 흔해진 콘크리트 건물의 첫 사례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당시 콘크리트는 최첨단 공법이었다.
20세기 초만 해도 등대는 선진기술의 집약체였다. 단순하게 불빛만 비추는 곳이 아니라 이곳에 최초로 무선전신지국을 설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제 정세의 동향을 감지하고 보고하는 중요한 목적까지 수행했다.
등대는 대부분 벼랑 끝이나 비좁은 곶, 외딴 섬에 있기 때문에 자재 운반이 힘들고 건물을 세우기도 쉽지 않다.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獵淪?높이 지어야 했고, 바다의 소금기와 거센 파도를 버틸 수 있어야 했다. 따라서 첨단의 건축 기법과 기술이 결합된 건축물이 바로 등대였다.
현재 우리나라 등대는 유인등대 41개, 원격 조종하는 무인등대 719개 등 740개가 있다. 작은 포구 방파제에 서 있는 등표와 갯바위 등에 올라 있는 등부표까지 합치면 그 수는 1,550개에 달한다.
외롭기만 했던 등대들이 최근 일반에 가까워지고 있다. GPS의 발달로 등대의 뱃길 안내 비중이 점차 왜소해지면서, 새롭게 찾은 탈출구가 체험관광이다.
제주 우도등대에는 전 세계 등대 모형을 볼 수 있는 등대공원이 조성됐고, 호미곶 영도 오동도의 등대에는 등대박물관, 등대체험관 등이 만들어졌다. 부산의 가덕도, 울산의 울기와 간절곶 등대는 등대지기(정식 명칭은 항로표지원) 숙소를 개방, 하룻밤 등대지기 체험도 가능케 했다.
가덕도 등대는 군사지역 안에 있어서 미리 등대 체험을 신청해 선정된 사람에 한해서만 출입이 허용된다. 올해 1,2월은 내부 수리로 개방하지 않는다. 3월 등대 체험은 2월 1~8일에 신청을 받는다. ● 부산지방해양수산청 http://pusan.momaf.go.kr (051)609-6392
울기 등대와 간절곶 등대는 여름과 겨울방학 때만 학생이 있는 가족에 숙소를 개방한다. 이번 겨울 방학은 이미 예약이 마감됐다. ● 울산지방해양수산청 http://ulsan.momaf.go.kr (052)228-5611~3
인천=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