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산행 전동차 안은 퇴근시간이 임박해선지 사람들로 붐볐다. 통로를 비집고 들어가 겨우 손잡이를 잡을 수 있었다. 앉은 사람들 머리위로 까만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앞 사람이 불쑥 일어서더니 자리를 내준다. 깡마른 체형의 30쯤 된 청년이다. 서너 정거장이 지난 뒤 옆자리가 비자 난 예약된 자리라도 되는 듯 그를 앉혔다. 집까지는 아직 한 시간 남짓 걸려야 한다.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 그의 음성은 외모와는 달리 부드럽고 굵었다.
"지행이요""아! 저도 거긴데요" 그는 신기한 듯 금방 환하게 웃었다. 도심의 지하를 벗어나 땅 위로 올라온 차는 이내 화사한 석양빛에 물들며 꿈처럼 달리고 있었다. 그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말을 걸어왔다. 청년은 지방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지 몇 년이 지나도록 아직 취직을 못했다고 했다. 1차는 합격인데 무슨 연유인지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다고, 아마 깡마른 용모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소탈하고 약간의 비음 섞인 목소리가 친근감을 주었다.
지행 역에 내렸다. 해가 떨어지자 금세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와 집의 방향이 비슷해서 철도변의 작은 샛길로 들어섰다. 가로등이 군데군데 켜져 있었다. 그는 느닷없이 물었다.
"모구리라는 거 아세요?""모구리라면 일본말로 잠수한다는 뜻인데 혹시 잠수부?""예, 아마 잠수부가 될 것 같아요." 통영 사는 대학 친구가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는 모구리 집안이라고. 정 취직이 안되면 내려와 같이 모구리나 하면 어떻겠냐고 권유한다고. '모구리나 하면서...' 어찌 들으면 한가하고 낭만적으로 들리는 이 말, 모구리. 그러나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청년은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걷다가 조금은 허탈한 말투로 독백하듯 말했다. "그런데 제가 바다를 되게 무서워하거든요."
무서운 바다를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야 하는, 두렵지만 삶을 향해 의연히 가려는 그의 모습이 가엽다. 저런 청년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다니. 2004년 미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버락 오바마가 한 연설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시카고의 사우스사이드에 글을 읽지 못하는 어린이가 있다면, 비록 그 아이가 제 자식이 아니어도 그것은 제 문제입니다. 한 노인이 약값을 내지 못해 약값과 집세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면, 그 분이 제 조부모님이 아니라 해도 제 삶은 더욱 가난해집니다. 어느 아랍계 미국인 가족이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 채로 올바른 절차 없이 체포된다면 그 사건은 제 인권을 위협하는 것입니다."그의 연설은 광야의 외침처럼 들렸다.
얼마 전 통영 앞 바다에 바다목장을 만든다는 프로그램을 TV에서 방영했다. 수중 촬영된 화면을 보니 가파도 해저의 다금바리와 돌돔을 거느리고 유유히 유영하는 청년이 잠수마스크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전동차 안에서 만났던 청년의, 얼굴을 맘껏 구기는 그 독특한 웃음을 닮았다. 순간 나는 화면속의 그가 그 청년이나 되는 것처럼 "이제 바다가 두렵지 않니? 너, 바다에 드디어 적응 했구나!"하고 마음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바다에 빠진 것처럼 가슴이 조여오고 울먹해졌다.
바다에 들어가면 호흡곤란으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쳐내며 용감하게 바다에 뛰어든 모구리 청년의 생명을 건 믿음처럼 실직자 없는, 두려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의 도래를 믿어보는 거다. 험한 세상에서 우리가 간구하는 만큼, 염원하는 만큼 보내오는 축복을 의심 없이 한번 믿어보는 거다. 설사 그 염원이 지금은 향기 없는 그림자에 불과 할지라도, 언젠가는 허망한 그림자를 걷어내고 실체를 마주 볼 수 있을 거라는, 만질 수도 있을 거라는 것을. 믿어 보자.
수필가 홍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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