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당은 신문ㆍ방송 겸영을 허용하는 미디어 관련 법안 개정을 어떻게 해서든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이에 맞서 야당은 총력 저지를 다짐하고 있고, 지상파 방송사들도 반대 파업에 나서는 등 정국이 일촉즉발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정부 여당이 신문ㆍ 방송 겸영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리는 단순하다. 신문 산업이 어려우니 방송 진출을 허용해야 하고, 이를 통해 우리도 세계적 미디어 기업을 육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입규제 철폐는 블루 오션을 창출하고 전체 시장의 파이를 키우기보다, 여러 부작용만 초래하면서 기존 레드 오션의 뺐고 빼앗기는 시장 재편으로 끝날 가능성이 더 크다.
현재 신문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몇몇 신문사는 기획력 취재력 편집력 등 여러 면에서 다른 신문사보다 우월하다. 종합일간지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는 이들이 동시에 방송에 진출한다면 방송시장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공산이 크다. 문제는 대형 신문의 영향력 확대가 우리 사회의 여론 다양성을 상당히 위축시킬 것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대형 신문도 다양한 사회 계층을 대변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신문의 방송진출은 이른바 국민의 여론 편식현상을 초래할 개연성이 크다. 밥상에 반찬 가짓수가 많은 것보다 균형 잡힌 식단이 중요하다. 천편일률적 진보 성향의 목소리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듯, 보수 일변도의 의견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도 나라와 사회의 이성적인 발전에 방해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 미디어 그룹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세계 10대 미디어 그룹의 대다수는 영어권 국가를 시장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세계 73개국의 인구 20억 명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있다. 특히 미국이 세계 미디어 산업의 선두주자로 군림하는 것은 인구 3억 명의 확고한 내수 기반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영어로 된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측면을 살펴보면, 방송 뉴스는 근본적으로 돈이 되기 힘들다. 뉴스 콘텐츠는 보도가 끝나는 시점에 콘텐츠 가치가 반감되고, 해당 지역을 벗어나면 가치를 거의 상실한다. 사실 돈은 영화 사업에서 나온다. 타임 워너 그룹의 경우, 전체 매출 중 뉴스 채널 CNN이 차지하는 비율은 5%도 되지 않는다. 대신 케이블과 영화 사업에서 50% 이상의 수익을 얻는다. 루퍼드 머독의 뉴스 코퍼레이션 역시 뉴스 매출 비중은 5%가 안 된다.
결국 세계적 미디어 기업 육성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신문ㆍ방송 겸영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장밋빛 수사일 수는 있어도 논리적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신문ㆍ방송 겸영 허용은 산업진흥의 실익은 없이 여론독과점 현상만 초래할 공산이 큰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도 신문ㆍ방송 겸영에 신중한 정책을 선택해 왔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2007년 11월 상위 20개 시장에서 제한적으로 신문ㆍ방송 교차소유 정책을 확정했지만 연방 상원은 지난해 5월 이를 부결시켰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여론독과점이 우려된다"며 초당적으로 반대한 결과이다. 그만큼 신문ㆍ방송 겸영 허용은 신중하게 다뤄야 할 문제이다.
정부 여당은 무작정 신문ㆍ방송 겸영 허용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여론 다양성과 산업 진흥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구체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정부 여당의 주장이 옳다면, 국민과 야당이 끝내 반대할 리 없다. 힘의 논리가 아닌, 이성의 논리에 의한 정책 결정을 모두가 고대하고 있다.
이용경 국회의원ㆍ창조한국당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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