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연봉조정 신청
[스포츠한국]
선수와 구단간의 연봉계약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택할 수 있는 제도가 연봉조정신청이다. 야구규약 제76조에 따르면 '총재는 1월10일 오후 6시까지 조정신청을 수리하며 조정위원회는 10일 이내 (문제를) 종결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조정위원회는 총재를 위원장으로 양측 변호사, 중립적인 야구인 2명 등 4, 5명으로 꾸려진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연봉조정신청을 낸 선수는 1984년 해태 강만식부터 올해 삼성 박한이(30)까지 모두 93명. 박한이는 2005년 롯데 손인호(현 LG) 이후 4년 만에 연봉조정신청을 낸 선수로 기록됐다.
역대로 선수가 승리한 경우는 2002년 LG 유지현이 유일했다. 74명은 조정 직전 취소했고, 17명은 구단 제시액대로 사인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지난해 타율 3할1푼6리 4홈런 41타점 57득점을 기록한 박한이는 2억4,300만원에서 1억700만원이 인상된 3억5,000만원을 요구한 반면 구단은 2억7,000만원을 제시했다.
▲ 상처뿐인 영광-유지현
2002년 유지현은 2억2,000만원을 요구했고, 구단은 전년도 연봉 2억원에서 1,000만원이 삭감된 1억9,000만원을 제시했다. 조정위원회는 2001년 타율 2할8푼3리 9홈런 53타점 90득점의 빼어난 활약을 한 유지현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유지현은 2003년엔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고도 1년 계약의 수모를 겪었고, 2004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 괘씸죄 트레이드-이해창
삼성 이해창은 1987년 연봉조정신청을 냈다가 쫓겨난 케이스다. 1982년 MBC 멤버였던 이해창은 1985년 삼성으로 트레이드 됐는데 이듬해인 1986년 타율 3할1푼5리로 맹활약했다. 그러나 '괘씸죄'에 걸린 탓에 청보로 이적해야 했고 1988년이 선수로서는 마지막 해였다.
▲ 미ㆍ일의 경우
미국프로야구에서는 풀타임 빅리거로 3년 이상 6년 미만의 선수에게 연봉조정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6년째엔 FA가 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조정위원회에서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게 되는데 구단이 이기는 경우가 많다.
두산 김선우도 콜로라도 시절이던 2006년 연봉조정신청을 낸 적이 있는데 패소했다. 구단은 60만 달러를 제시했고, 김선우는 80만 달러를 요구했었다.
일본의 경우 커미셔너와 양대리그 회장 3명이 연봉조정위원이 된다. 조정위원회는 구단 대표자와 선수를 불러서 소견을 듣는다.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조정위원회가 절충점을 찾을 수 있다. 선수 요구액이 1억엔, 구단 제시액이 5,000만엔일 때 조정위원회는 7,500만엔으로 조정할 수 있다.
최경호기자 squeeze@sportshankook.co.kr
양준호기자 pires@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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