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정국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 한국 언론은 좌와 우, 보수와 진보의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그 고질이 반년도 지나지 않아 되풀이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법 개정안을 놓고서다. 보수언론들은 한목소리로 MBC와 전국언론노조의 총파업을 비판하는 기사들을 쏟아냈고, MBC는 뉴스ㆍ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연일 '조중동ㆍ재벌 방송'에 대한 우려를 부각시켰다.
공정성이라는 언론의 기본 사명은 간 데 없고, 좌우 어느 한쪽을 대변하면서 자사의 이익만을 좇는 언론사들이 미디어전쟁에 총대를 메고 나선 꼴이다.
■ 보수신문들 "밥그릇 지키기"
보수신문들의 MBC 비판 기사가 쏟아진 건 전국언론노조가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시작한 지난달 26일부터다. 보수언론들은 그 선두에 있던 MBC를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12월 27일자부터 1월 6일자까지 소위 조중동 3개 신문이 방송 파업을 비판한 기사 게재 건수는 52건. 조선일보가 11건, 중앙일보가 25건, 동아일보가 16건이었다.
과거의 동양방송을 되찾겠다는 의지의 중앙일보 보도가 가장 많았다. 중앙일보는 12월 30일자 4면에서 조선일보 기자 출신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의 입을 빌어 "MBC처럼 직원들이 1억원이 넘는 돈을 받는 직장은 대한민국에 많지 않다. 그래서 MBC의 파업이 밥 그릇 지키기란 비판이 나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경제난이 심화하는 가운데 독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는, 본질을 벗어난 보도라는 목소리가 일었다.
조선일보는 12월 29일자 8면에서 MBC '뉴스데스크'의 자사 위주 보도 사례를 들며 MBC가 사익을 지키기 위해 방송법 개정안을 악법으로 몰아붙인다고 비판했다. 1월 3일자에선 'MBC가 파업을 해도 큰 차질이 없는 것은 방만한 인력구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기사를 실었다.
보수언론단체인 미디어발전국민연합의 자료를 인용한 이 보도는 MBC가 차장대우 이상 직원이 65.7%에 달하는 방만한 조직이라며 잉여 인력을 구조조정하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MBC 노조 관계자는 이에 대해 "MBC는 부국장급까지 일선에서 일을 하고 있는 조직"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12월 29일자 사설에서 '그들만의 방송, 국민 위해 개혁하라'고 주장했고, 1월 2일자 칼럼은 MBC를 '괴물'이라고 지칭했다.
■ MBC "조중동ㆍ재벌 언론"
MBC의 편향보도도 지탄을 받았다. 한나라당 방송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매번 진보 성향의 취재원들에 치우친 보도를 했으며, 시민단체의 의견을 물을 때도 언론노조와 연관이 있는 취재원들에 편중됐다는 지적이다. 스스로 공영방송임을 강조하면서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에서 자사의 입장에 치우친 보도를 남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뉴스데스크'는 12월 26일부터 1월 6일까지 총 27개의 기사를 통해 방송법 개정안 처리의 부당함을 보도했다. 12월 26일 '언론노조, 목숨 걸고 언론악법 저지' 등 4개의 기사를 내보냈고 28일에는 '방송법 개정안 반대 61%' 등 3개의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뉴스뿐 아니라 여러 시사프로그램을 통해서도 같은 기조를 이어갔다. 시사프로그램인 '시사매거진 2580'은 12월 21일과 28일 각각 '재벌 방송 출현?'과 '묻지마 방송법'에서, '뉴스 후'는 1월 3일 '방송법 개정,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통해 자사의 입장을 알렸다.
보수언론단체들은 이같은 MBC의 보도는 "MBC가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 방송이 아니라 노조의 방송임을 입증하는 사례들"이라고 비난했다. 공정언론시민연대는 12월 3일부터 1월 3일까지 지상파 3사의 미디어법안 관련 뉴스보도를 분석한 자료를 내고 "MBC가 KBS와 SBS에 비해 5배나 많은 보도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공언련에 따르면 이 기간 MBC 뉴스에서는 미디어법안에 반대하는 언론노조와 시민단체의 발언이 20회, 진보적 학자의 발언이 28회 인용된 반면, 미디어법안을 찬성하는 의견은 단 한 차례도 전파를 타지 않았다.
양홍주 기자
● 방송 사업에 열심인 보수언론들
MBC와 진보 성향 언론들은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법 개정안이 소위 조중동 보수신문사들의 지상파방송 사업 진출을 위한 길터기 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세 신문사의 MBC에 대한 비판도 결국 지상파방송 진출이라는 '자사 이익'을 위한 보도라는 것이다.
보수신문사들은 이에 대해 "단순한 가정에 불과하다"며 반박하고 있지만, 이들은 그동안 방송사업 진출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에 그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3사 중 방송 萍藪?가장 공을 들여온 곳은 중앙일보다. 1999년 중앙방송을 설립, 다큐멘터리 전문채널 Q채널과 골프전문채널 J골프를 운영 중이며 2006년엔 미국의 미디어그룹인 타임워너와 합작법인 카툰네트워크코리아를 만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언론계에서는 "중앙일보가 지상파 방송 진출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계속 나돌았다. 그러나 중앙일보 관계자는 "우리는 현재 케이블TV 영역을 강화하는 방안만 생각하고 있는데, 넘겨짚어 이야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도 방송사업에 적극적이다. 2007년 32억원을 투자해 스튜디오 등 방송시설을 만들었고 같은 해 4월 경제전문채널 비즈니스앤을 출범시켰다. 지상파 진출 등 향후 방송사업 계획에 대해 조선일보 관계자는 "노 코멘트가 회사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도 방송사업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서울 세종로 사옥에 스튜디오를 마련, 동아뉴스스테이션이라는 뉴스 프로그램을 인터넷을 통해 방송하고 있다.
김차수 동아일보 방송사업본부장은 "신문ㆍ방송 겸영을 가능토록 하는 법 개정을 감안해 내부적으로 준비 단계에 있다"며 "구체적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의 방송사업에 대한 의욕은 각 사 대표들의 올해 신년사에서도 드러난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2일 신년사에서 "TV모니터를 통해서도 우리가 만든 심층적인 콘텐츠를 내보낼 각오를 본격적으로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은 "신문ㆍ방송ㆍ인터넷 등 미디어 영역간의 장벽과 국가간 장벽이 사라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흐름"이라고 말했다.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은 "우리 모두의 의지를 합친다면 상암동 DMC에서 새로운 동아방송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제기 기자
● 미디어전쟁 스포트라이트 받은 '공언련'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법 개정안으로 촉발된 미디어전쟁에서 실상 가장 부각된 조직은 보수 성향의 신생 언론시민단체들이다.
보수신문들의 가장 중요한 취재원으로 등장한 이들은 지난해 초반까지만 해도 진보적인 언론시민단체들에 주도권을 내준 채 변방에서 작은 목소리를 내던 형편이었다.
그 중에서도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 등이 공동대표인 공정언론시민연대(공언련)는 가장 많은 보도자료와 방송모니터를 쏟아내 주목받았다.
지난해 9월 '훼손된 방송의 공정성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를 내걸고 출범한 공언련은 곧바로 KBS와 MBC의 9시 뉴스를 분석해 "공영방송의 편파보도가 심각하다"는 자료를 만들었고, 보수신문들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공언련은 이번 방송법 개정안과 관련해서도 MBC의 인터뷰가 진보인사들에 편중됐다는 자료를 내 MBC 비판에 가장 큰 '공'을 세웠다.
이밖에도 33개 보수단체로 구성된 미디어발전국민연합, 공영방송발전을위한시민연대(의장 이민웅 한양대 명예교수)도 미디어 문제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단체들이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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