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안으로 인해 국회가 파행하던 지난달 26일부터 시작된 전국언론노조의 총파업. 해를 넘겨 6일로 12일째 계속된 파업의 선두는 항상 MBC 사원들이 차지했다.
서울 MBC본사 노조원의 대부분인 1,000여명이 참가하고 있다. MBC는 이 때문에 인기 예능프로그램의 재방송 편성 등 방송 차질로 시청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으며, 보수단체들로부터 '밥그릇 지키기' 투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의 대오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왜일까. 어째서 MBC가 미디어전쟁의 선봉을 고집하고 있을까.
노조가 밖에서 투쟁하는 동안 MBC는 연일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을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을 알리는 프로그램을 제작해왔다. '뉴스데스크'로 법안의 단점을 짚고, 시사프로그램을 통해선 심층적으로 '자본의 방송 장악'에 대한 우려를 보도하고 있다.
비록 사측도 공식적으로 노조의 파업에 동조하진 않지만 심정적으로 함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마치 MBC 사내방송을 보는 것 같다"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MBC는 방향을 틀지 않는다.
MBC가 이토록 방송법 개정안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이유는 여당의 법안이 다름아닌 MBC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구체적으로는 방송법 개정안 중 '신문이나 대기업이 지상파 방송 지분 20%를 소유할 수 있다'는 조항 때문이다.
MBC 관계자는 "대형 자본이 들어올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지상파 방송은 민영화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MBC밖에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이 조항은 MBC를 노린 것이라는 생각을 MBC 사원이라면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KBS2 TV도 MBC처럼 민영화의 여지가 있음에도 KBS노조가 MBC만큼 강경투쟁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언론계 주변에선 "KBS의 수익구조가 좋지 않기 때문에 민영화가 힘들기 때문"이라는 반응이다.
KBS의 한 간부는 "어떤 기업이 연 1,000억원 이상 적자가 나는 방송사를 사겠다고 덤비겠느냐"며 MBC와는 다른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박성제 MBC 노조위원장은 "방송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당장 MBC를 본격적으로 민영화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될 것이고, 결국 방송문화진흥회의 지분 정리 등을 통해 시장에 던져지는 MBC를 노리는 대형 신문사와 자본의 컨소시엄이 이뤄질 것"이라며 "이렇게 자본에 장악된 MBC는 한나라당에 치우친 보도를 하는 방송으로 변하게 되며, 여론 독과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주장했다.
공익기관인 방문진이 지분의 70%를 소유하고 있어 공영방송으로 불리지만, 수익의 대부분을 광고로 충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영의 성격이 섞여있는 특이한 경영구조도 MBC를 특별히 부담스럽게 만드는 부분이다.
지난달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방문진 20주년 기념식장에서 "MBC는 정명(正名)을 스스로 돌아볼 시점이다"고 말한 것에 대해 MBC 직원들이 특별히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방문진의 한 관계자는 "방문진의 이사진 임기가 8월초에 끝나는 만큼 만일 신임 이사진을 선임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친정부적인 인사들로 새 이사진을 구성하면 이후 이들이 방통위의 허락을 받고 MBC 지분을 팔아 민영화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MBC의 파업에 대해서는 '지상파 방송마저 자본의 논리에 맡길 수 없다'며 호응하는 의견과 '변화를 두려워하는 고집스러운 모습'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뚜렷하게 엇갈리고 있다.
최창섭 서강대 명예교수는 "누구를 주인이라고 부를 수 없는 현재의 MBC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파업을 하며 편향된 보도를 하고 있는 것뿐"이라며 "스스로 공영방송이라고 주장하는데 과연 방문진이 MBC의 방송이 공영의 모습인지 아닌지를 관리감독하고 있나 되돌아 봐야 하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민영으로의 갈 길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황근 선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분명 자본이 방송을 장악하는 것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하지만 시청자들이 봤을 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사의 이해관계에 관한 보도에 적극적인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 여론독점 방지 장치가 관건
세계 주요 국가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미디어의 산업경쟁력과 공익성을 감안한 정책 틀을 만들어왔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디어전쟁에서 한나라당은 탈규제로 방향을 튼 유럽 주요 국가들을, 반대하는 측은 신문ㆍ방송 겸영을 엄격히 금지하는 미국을 근거로 내세우며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언론학자들은 "외국 사례를 국내에 일방적으로 好淪求?것은 무리"라며 "각 나라의 미디어 환경과 사회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미디어 소유 규제 완화로 정책 방향을 잡고 있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1997년 방송사업자에 대한 지분참여 제한 규정을 폐지하고 방송시장 전체의 시청자점유율 제한 방식을 도입했다.
시청자점유율이 30%를 넘지 않는 한 개인이나 법인(신문사 포함)의 방송사 지분 소유를 무제한 허용한 것이다. 자본의 자유로운 진출입과 기업간 결합을 통해 미디어 산업의 시너지 효과를 유도하면서도 여론 다양성을 지키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영국도 2003년 커뮤니케이션법을 개정해 미디어 소유 규제를 완화했다. 방송사간의 합병이나 이종 미디어간의 합병에 대해선 공익성 심사라는 제어장치만 두고 각 사안에 따라 탄력적 규제를 적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미디어간 지분 교차 소유는 다소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시장점유율 20%의 신문사는 민영방송인 채널3의 지분을 20%까지 소유할 수 있지만, 신문시장 점유율이 20%를 넘으면 방송 면허를 받을 수 없게 한 것이다.
'미디어 왕국'으로 불리는 미국은 신문ㆍ방송 겸영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기업간 인수ㆍ합병에 관대한 미국의 사회적 풍토, 타임워너 등 글로벌 미디어기업들이 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대단히 의외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신문ㆍ방송 겸영은 지속적으로 추진돼 왔다. 명분은 역시나 미디어산업 경쟁력 강화였다. 2003년 연방통신위원회(FCC)는 TV시장 규모를 감안한 신문ㆍ방송 겸영 허가 규칙을 제정했으나 의회에서 기각됐다. 2007년엔 FCC가 '동일 지역 신문ㆍ방송 교차 소유 금지 완화' 결정을 내렸으나 상원이 불승인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럽 주요 국가들이 탈규제 정책을 광범위하게 시행하고 있지만 자유시장 원칙만 따른다고 볼 수는 없다. 미디어 규제를 최대한 푸는 반면 공익을 지키기 위한 여러 장치들도 함께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한 언론연구기관의 관계자는 "유럽 국가들의 정책은 공익을 중시하면서도 방송ㆍ통신융합 등 여러 환경 변화에 적응하려는 고심의 결과물"이라며 "단순히 그들의 탈규제 정책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신문ㆍ방송 겸영 금지도 단순히 현상만을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자유방임형의 미디어 정책을 일관해 왔기 때문에 여론 독점을 막을 사회적 안전장치가 거의 없고, 신문ㆍ방송 겸영 금지는 이런 사회적 현실에 대한 여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송종길 경기대 다중매체영상학부 교수는 "미국의 극단적인 예를 일반화시켜서도 안 되지만 미디어의 산업적 가치만 내세우는 것도 문제"라며 "우리 사회에 여론 독점을 막을 장치가 있느냐는 가장 중요한 논의를 배제한 채 여야가 서로 대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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