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은 경제위기를 의식한 듯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평소보다 느리고 낮은 톤으로 또박또박 연설문을 읽어내려 갔고, 얼굴 표정은 비장했다.
대통령이 서 있는 연단 뒤편에는 이례적으로 태극기 10개가 배치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경제살리기에 온 몸을 던지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와 우국충정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위기'를 무려 29차례나 언급하고 '경제' 17차례, '일자리' 14차례, '투자' 8차례 등 연설시간 대부분을 경제 부문에 집중적으로 할애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 대통령은 또 작심한 듯 "이제 국회만 도와주면 국민의 여망인 경제살리기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쟁점법안 처리를 놓고 대치 중인 국회를 향해 직접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팽팽한 긴장감은 세 명의 할머니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조금 누그러졌다. 이들 세 할머니는 지난달 이 대통령의 민생행보 중 우연히 접한 일반 시민들이다.
이 대통령은 먼저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만나 목도리를 건네 화제가 된 무ㆍ시래기 노점상 박부자 할머니를 거론하며 "나라와 대통령이 잘되기를 기도한다고 해 콧잔등이 시큰해졌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보도를 보고 뜨개질로 목도리를 만들어 보낸 미국 시애틀의 강보옥 할머니를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마포의 돼지갈비집 할머니에 대해선 "나라가 어려워지면 말만 많고 남 탓을 하는데 각자 위치에서 맡은 일을 잘해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이 분들로부터 큰 감동과 용기를 얻었다"면서 거듭 각오를 밝혔다.
연설문 작성의 뒷얘기도 있었다. 우선 시간이 공력이 꽤 들었다. 지난달 중순부터 청와대 핵심 참모들이 총동원돼 치밀히 준비해온 것이다. 대국민 담화의 성격이 있는데다 집권 2년차의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기본 골격은 경제수석실 등 각 수석실이 마련한 내용을 바탕으로 박재완 국정기획수석과 김상협 미래비전비서관이 마련했다. 이어 박형준 홍보기획관과 정용화 연설기록비서관이 연설문을 다듬었고 이동관 대변인과 김두우 정무기획비서관도 참여했다.
몇 단계 과정을 거쳐 가안이 완성됐지만 이 대통령은 핵심 참모들과 여러 차례 독회를 가졌고 연설 시작을 40여분 앞두고도 일부 문구를 수정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준비과정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국민들에 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문했다고 한다.
국정연설 시점에 대한 이견도 있었다. 국회 대치가 풀린 뒤 하는 게 좋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좌고우면하지 않고 할 일은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 위해 예정대로 연설을 진행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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