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호텔식당에서 식사를 끝내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일본 외무성 대표 두 명이 찾아 왔다. 얼굴에 미소를 띠며 불편한 게 없는지 묻고는 테이블에 앉자 마자 두둑한 봉투를 건네줬다. 돈 같아 보여 주저 했더니 괜찮다면서 확인하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현금과 함께 예쁘게 타이핑된 명세서가 같이 있었다. 나는 잠시 당황스러워 그 직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웃으면서 미리 체류비용을 계산해서 선금을 드리는 거라면서 동봉한 명세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명세서는 5박 6일 체류 중 일정이 짜여 있는 아침이나 점심, 저녁 값은 빼고 아무런 약속이 안 돼 있을 때 식사비와 하루당 용돈까지 더해서 그 합계를 상세히 계산해 놓고 있었다. 나름대로 얼마나 정확한지 봉투 안에는 동전까지 섞여 있었다.
내가 해외를 많이 다녔지만 이렇게 쩨쩨하게 일일이 밥값까지 계산해서 뺄 건 빼고 동전까지 선불로 받아본 적은 의정생활 중 처음 있는 일이라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주저했다. 봉투를 확 테이블 위에 던지고 그냥 나가버리고 싶은 충동이 벌컥 일었다. 이를 짐작했는지 외무성 직원은 내게 다가와서 이는 외무성의 방침이니 결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면서 언젠가는 자기들도 제도를 바꿔 이런 실례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날 저녁 만찬은 외무성 주최였다.
음식은 날더러 선택하라면서 옛날 고전 전통음식이 어떠냐 묻기에 좋다고 했다. 식당은 도쿄 시내 뒷골목에 자리 잡은, 성냥 같이 가느다란 4층 빌딩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한정식집 같아 보였다. 아주 협소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서 내리니 호스티스들이 무릎을 꿇고 우리를 환영했다. 엘리베이터를 나오자 곧 다다미 바닥이었고 그것이 방으로 연결됐다.
일행은 외무성 차관을 포함해 전부 6명이었고 기모노 차림의 여자 둘이 부지런히 심부름을 했다. 처음에 나온 조그마한 종지에 담긴 음식은 뭔지 몰라도 생선 내장 같기도 한 게 비위가 뒤집혀서 먹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도 무슨 끈적끈적한 썩은 콩 같아서 먹기에 힘이 겨웠다. 전통음식은 아마도 내겐 잘 맞지 않는지 모두가 비위에 맞지 않았다.
이어서 생선회가 나오는데 보니 생선이 통째로 누워있고 회는 이미 토막토막 잘려서 젓가락으로 집어 먹기 쉽게 만들어 놓았다. 나는 젓가락으로 한 토막 집으려다 생선이 별안간 꽁지를 들었다 놓고 눈을 껌뻑 하는 것 같아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 앉았다. 생선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다. 외무성 대표들은 웃느라고 정신을 못 차린다. 그런 일은 내게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이렇게 토막이 났는데 아직도 살아있는 게 신기했지만 어찌 산 것을 앞에 놓고 먹을 수 있는지 별안간 이들이 야만인 같아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에서도 이런 식의 산 생선회를 즐겨 먹는 걸 알게 됐다.
인종차별에 대한 처벌법 얘기가 나왔다. 그들의 대답은 그렇잖아도 처벌법을 준비하고 있으며 처벌은 여성차별에 대한 처벌과 흡사하다고 답변했다. 나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형벌은 비교적 엄격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도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이후 인종차별에 대한 수십개의 처벌 법안이 쏟아져 나왔다. KKK같은 백인우월주의 폭력단체에 대한 형벌은 점점 더 엄격해졌고, 결국 KKK 는 이제 미국에서 거의 사라졌다. 인종차별적인 언사를 했을 때도 엄한 처벌을 할 수 있게 법안들이 더욱 더 강력하게 바뀌었다. 흑인이나 그 밖에 아시아계에 대한 조롱이나 모욕적인 언사도 엄한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
때문에 결국 그 효과로 오늘날 미국 내 인종차별은 옛날에 비해 현저히 줄었고, 특히 미국에 사는 아시아인들의 위치는 더욱 발전해 이제는 백인으로부터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됐다. 1950년대까지도 흑인들은 버스 뒤칸에 앉아야 했고 식당에도 흑인은 환영 안 한다는 푯말이 공공연하게 나붙었지만 이제는 다 옛날 얘기다. 물론 아직도 보이지 않는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는 걸 부인할 수 없겠지만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미국 내 인종차별이 현저히 개선된 건 사실이다. 미국은 이제 흑인 대통령을 맞았다. 얼마 전에 알고 보니 일본에서도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대우가 옛날보다 현저히 줄었고 한국계 참의원도 생겼다고 한다. 재계에서도 성공한 재일동포의 수가 옛날보다 크게 늘었다는 얘기다 들린다.
이젠 한국에도 외국인들이 많이 눈에 띈다. 주로 중동이나 동남아 계통들이 많아 보인다. 한번은 부산에 초청받아 갔다가 뜻 있는 한국 기업인들이 후원하는, 부산 내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을 돕기 위한 저녁 모금행사에 참석했었다. 인도네시아 정부를 대표하는 인도네시아 외무성 대표 2명도 참석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부산으로 일하러 온 인도네시아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대우는 심각했다. 몇 달치 임금을 안 주고 심지어 구타를 하는가 하면, 사닥다리에서 떨어졌는데도 병원은 커녕 그냥 현장에 내팽개치는 경우도 있다는 지적이었다.
믿을 수 없는 얘기들이었다. 이들의 절반 이상이 모국에 돌아가고 싶어도 여비가 없어 못 간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을 돕기 위해 한국 기업인들이 모였고 여기서 모금한 돈으로 여비도 대주고 이들 노무자를 위한 축구시합도 열어 푸짐한 상품으로 그들의 향수를 달래는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외국 노동자들을 이처럼 학대하는 한국인들이 있는가 하면 학대 받는 이들을 돕는 한국인들도 있다. 나는 이를 바라보며 미국에서처럼 정치 지도자들이 앞장서 반(反)인종차별법을 통과시키고 이들을 돕는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타인종에 대한 차별대우는 몇 천 년 내려온 인간의 비극이었다. 불과 100 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는 노예제도가 합법이었다. 이젠 이 지구상에서 인종차별은 점차 없어지고 있다. 한국도 하루속히 정치인들이 앞장 서 강력한 반인종차별법을 통과시키고, 이를 어길 경우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세계 곳곳에 나가있는 한국인들도 그들에 대한 차별대우에 항의할 수 있을 것이다.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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