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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편되는 세계질서-위기에 기회 있다] 1부 <3> 부상하는 경제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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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편되는 세계질서-위기에 기회 있다] 1부 <3> 부상하는 경제블록

입력
2009.01.08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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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군주가 무너지면 군웅할거 시대가 오는 법. 미국의 '글로벌 독점 체제'가 흔들리면서, 지역마다 '경제블록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미국을 대체할 절대파워국가가 없는 상황에서, 각국은 지역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 활발해진 지역 통합

유럽중앙은행(ECB) 출범 10주년을 맞은 지난해는 세계 각지에서 지역 통합이 더 활발하게 진전된 한 해였다.

우선 유럽에서는 개별국가들의 반대로 지지부진했던 유럽연합(EU) 헌법(리스본 조약) 비준이 목전에 이르렀고, 7월에는 북아프리카, 중동 국가, EU 회원국 등 지중해 연안국들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지역 협의체인 '지중해 연합'을 창설하는 데 합의했다.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터키 그리스 등 남동 유럽 12개국은 남동유럽지역협의회(RCC)를 출범시켰다.

남미 12개국은 EU를 본뜬 남미국가연합(UNASUR)을 창설하기로 했고, 걸프협력기구(GCC)는 2010년 단일통화 도입을 추진키로 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경제통합이 진전되지 않았던 동아시아에서도 최근 들어 경제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 EU, 2010년 '유럽합중국'化

지역화, 블록화의 선봉은 역시 EU다. 단일화폐(유로화)까지 쓴지 벌써 10년. EU는 가장 앞선 경제통합체이자, 가장 강력한 경제권역이다. 특히 올 6월로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 이전에 각국에서 EU헌법 조약이 비준, 발효되면 2010년에는 사실상 정치 통합까지 실현될 전망이다.

경제적으로는 2010년까지 역내 서비스시장 개방과 노동시장 조기개방 등을 통해 EU의 잠재성장률과 고용률을 3%, 70%로 높이는 '신 리스본 전략'의 완성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난해부터 시작된 세계적 경제침체의 영향으로 EU 내 동유럽 회원국들이 구제금융을 받고 선진국들도 수출 감소에 따른 실업률 증가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신용경색이 발생한 후 달러, 유로, 엔화 등 국제통화가 아닌 자국 통화를 사용하던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급격하게 절하되면서 유로존에 편입될 필요성도 한층 높아졌다. 궁극적으로 정치ㆍ경제에서 모두 통합을 달성한 후의 EU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에 버금가는 슈퍼파워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 복잡한 미주대륙

미국은 전통적으로 다자간 무역체제를 선호했지만, 이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 등을 체결해 왔다.

궁극적으로는 북미와 중남미를 포괄한 미국 중심의 아메리카 대륙 경제 블록(FTAA) 형성이 목표지만, 남미 국가들과는 이념 차이도 있고 미국 내에서도 자유무역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어 더 이상 경제통합을 확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남미 국가들의 경제 통합 노력은 지난해 급진전됐다. 남미공동시장(MERCOSUR)과 안데스공동체(CAN) 등 두 개의 경제 협력체가 공존해 왔으나, 지난해 5월 남미 12개국이 모두 참여하는 UNASUR가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2007년 12월 출범한 남미은행도 현재 7개국이 참여하고 있지만 앞으로 칠레, 콜롬비아 등 다른 국가들이 참여하면서 단일 금융기구로 떠오를 전망이다. 다만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간의 주도권 경쟁, 회원국들 간 이념 및 경제 격차 등으로 인해 빠른 시간 안에 EU와 같은 경제 통합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 가장 느린 동아시아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과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그 동안 지역 통합 움직임이 상당히 미진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역내 경제공동체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중국의 세계 경제에서의 비중이 매우 커지고 역내 무역비중도 전체의 50% 가까이 근접하자 최근 들어 역내 협력을 확대,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말 글로벌 금융위기로 우리나라가 외화 부족 현상을 겪자 한중일 3국이 통화 스와프 한도를 확대키로 한 것도 역내 경제 협력 움직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은 중국과 일본의 상호 견제로 인해 다른 지역 경제블록에 비해 진전 속도도 느리고 통합의 강도도 느슨할 것으로 보인다.

■ 결국은 3극체제?

세계 경제 불황으로 무역규모가 크게 줄어들고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오승구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장기적으로 지역 내 무역협정이 확대되면서 미주, 유럽, 아시아로 이루어진 3극체제가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일한 패권국이었던 미국이 힘을 잃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힘을 갖춘 개별 국가가 나타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 확대를 위해서는 지역 공동체 형성이 진換?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오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유럽은 대부분의 회원국이 유로존에 합류하고 미합중국에 버금가는 유럽합중국이 실현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주지역은 미국 중심의 NAFTA와 남미공동체가 이원적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고, 아시아 지역은 일본의 강력한 견제 속에 중국이 주도하고 인도가 가세하는 형태의 느슨한 경제 통합체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 다자간 무역체제 한계 드러내보호무역 바람도 블록화 원인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장벽 없이 자유롭게 제품과 서비스를 사고 파는 것. 선진국부터 개도국까지 함께 모여, 이 자유로운 세상을 위한 규범과 원칙을 만드는 것. '다자(多者)주의'는 미국이 주도했던 지난 수 십 년간 세계경제의 '교리'였다.

하지만 다자주의는 지금 존폐위기에 처해있다. 한편으론 다자주의를 지탱했던 미국패권의 붕괴로 지역화 블록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는데다, 다른 한편으론 세계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보호무역 바람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자주의는 지난해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깨지면서, 그 한계를 명백히 드러낸 상태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주도로 DDA협상이 시작됐으나, 농산물 분야 협상 실패로 지연을 거듭하다 결국 지난해 7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결렬되기에 이르렀다.

공산품 분야와 달리 농업 분야에 대해서는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며 보호주의를 지속해 왔던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들이 브라질 호주 등 농업 국가가 요구하는 관세 및 보조금 철폐 등에 합의하지 못한 것이 주요 이유였지만, 협상 참여국들의 수가 너무 많아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어려운 것도 큰 이유였다.

이후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주요20개국(G20) 정상회담과 페루에서 열렸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참가국들은 DDA의 기본취지에 재차 합의했지만 결국 선진국과 개도국 간 이견 차로 12월 각료회의 개최가 무산됐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올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보호무역주의의 발호"이며 "DDA 타결이 시급하다"고 주장했지만 DDA와 같은 다자간 협상은 빨라야 올해 하반기에나 다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세계경제가 동시에 침체를 맞으면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돼, 다자간 무역협상의 보완장치로 추진됐던 FTA 체결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대선 때부터 "FTA가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으며, 최근에는 버락 오바마 차기 행정부가 경기부양법안에 자국산 제품을 우선 구매하자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조항을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심지어 미국이 개도국에 개방을 강요하고 자유무역주의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던 경제학계에서조차 보호주의적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오바마의 경제 자문역인 로라 타이슨 미국 버클리대 교수는 이달 초 전미경제학회 총회에서 "앞으로 미국 정부가 적어도 미국 내 생산비중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부시 행정부가 맺어온 양국 간 무역협정들은 경제적으로 미국 이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유무역 옹호론자로 알려진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 역시 "자유무역이 결국 모두에게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것은 이론일 뿐"이라며 "단기적으로 볼 때 모든 교역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으며 패자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강화할 것이냐에 대해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속히 진전된 세계화가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인 선진국-개도국 간 무역 불균형을 가져왔고 오히려 선진국이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 득세하면서, 앞으로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FTA 협상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역 내 한정된 국가들이 체결하는 역내 FTA 체결 등 역내 경제통합 움직임은 오히려 진전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라는 최대 소비시장이 무너진 상황에서 역내 무역의 활성화는 자국 경제에 도움이 되고 다른 경제권과의 협상에 있어 발언권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국가간 관계를 긴밀히 해 정치 안정까지 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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