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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시집 '못의 귀향'/ 배고프고 가난했던 시절, 고향·어머니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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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시집 '못의 귀향'/ 배고프고 가난했던 시절, 고향·어머니에 대한 추억

입력
2009.01.08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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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할 때가 되었습니다/ 육십 평생이라는/ 말을 할 때가 왔습니다'( '드디어 머리를 올리다' 중)

개인의 아픔, 역사의 고뇌를 담은 상징물로서의 '못'의 이미지에 천착해 온 김종철(62) 시인이 새 시집 <못의 귀향> (시학 발행)을 냈다. <등신불 시편> (2001) 이후 8년 만의 시집이다.

시집 제목이 상징하듯, 환갑 진갑을 모두 지난 시인의 시선은 아스라이 먼 유년시절로 향한다. 부산 서구 초장동,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야트막한 야산 기슭의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시인은 20편에 이르는 '초또마을 시편'에서 자신의 시세계의 원형질을 이루는 춥고 가난한 시절의 기억들을 불러낸다.

시인을 사로잡는 그 시절의 기억은 굶주림의 기억이요, 어머니의 기억이다. 시인은 장터에서 국수장사를 하며 4남매를 키운 어머니를 떠올리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불어 터진 국수입니다/ 눈물보다 부드럽게 불어 터진 가난/ 뜨거운 멸치 다싯물에 적신/ 저 쓰러지다 일어서는 시장기를 아직도 그리워합니다'('국수')라고 한다.

4남매가 나란히 밥상 앞에 앉아 커다란 양푼에 시금치, 콩나물, 열무김치를 넣고 고추장을 풀어 어머니가 슥슥 비벼준 비빔밥을 먹던 추억을 떠올리고는 '세상 살다 보면 비빔밥만 한 아량보다 큰 사랑은 없습니다/ 하나님도 세상을 이처럼 골고루 잘 비비진 못했습니다'('비빔밥 만세')라고 노래한다.

21세기에 추억상품으로나 팔리는 된장국과 꽁보리밥을 앞에 두고는 '꾸우꾹 눌러 담은 꽁보리밥 한 그릇/ 우리 시대 봉분을 닮은 꽁보리밥 그릇/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더욱 그립습니다'('꽁보리밥')라며 눈시울을 적신다.

추억의 힘이란 어디서 기인하는가. 그것은 적당히 타협해야 하고, 적당히 속물적이어야 하고, 적당히 가식적일 수밖에 없는 삶의 태도에 대해 '사는 게 다 그런거지, 그게 세상살이의 이치야'라고 합리화하려는 태도를 거부하는 시인의 양심에서 추동된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그것은 초로에 접어든 시인이 피폐한 삶을 끝내 견뎌내려고 끄집어낸 내면적 염결성의 힘이기도 하다.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어느덧 시력 40년을 넘긴 김 시인은 '못 5부작'을 기획하고 있다. <못에 관한 명상> (1992)에 이어 이번 시집이 연작의 두번째 시집이다.

그는 "객지에서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돌아가보면, 밑천이 드러나는, 결코 폼 잡을 수 없는 곳이 고향"이라며 "세상에 대해 숨김없이 발언하기에 앞서 내가 극복하고 뛰어넘어야 할 부분인 고향과 어린시절을 문학적으로 모두 발가 벗겨보려 했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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