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진 지음ㆍ최기영 엮음/푸른역사ㆍ352쪽ㆍ1만6,000원
이 책은 낡은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한다. 1948년 4월 19일 오후 6시 45분에 촬영된 것이다. 백범 김구(1876~1949)와 아들 김신, 그리고 비서였던 이 책의 저자 선우진씨가 38선 위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당시 저자는 스물여섯의 청년이었다. 이 사진은 이후 60여년 동안 저자의 삶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된다.
저자는 1922년 중국 랴오닝성 환인현에서 태어나 한국광복군 훈련을 받았다. 1944년 충칭에 있던 임시정부로 찾아가 경위대원으로 활동하다 이듬해 1월부터 백범을 보필했다. 1949년 6월 26일 백범이 안두희의 총격을 받고 서거하기까지, 그가 비서로 보낸 시간은 4년 6개월. 저자는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숨가빴던 백범의 마지막 시간을 담담히 들려준다. 올해는 백범 서거 60주기가 되는 해다.
친일파의 정치자금을 물리치는 노여움, 경교장에서 조용히 휘호를 쓰는 고요함, 김일성과 악수하는 당당함 등 백범의 인간적 면모를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다. 백범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저자의 회고록답게 이 책엔 백범의 체취와 숨소리가 가감없이 담겨 있다. 예컨대 이런 부분이다.
"경교장 생활은 풍족하지 않았다. 선생이 마지못해 돈암장을 찾았는데… 이승만 박사는 '남들은 모두 내게 돈을 주는데, 백범은 내게서 돈을 가져가는구먼' 하면서 입을 실룩거렸다. 선생은 아무 표정 없이 돈암장을 나섰다. 내가 도리어 속이 뒤집혔다."(74쪽) "(평양에서) 선생은 이날 점심때가 다 돼 '오늘은 나가 평양냉면이나 먹겠다'며 의관을 챙겼다. 당황한 지배인은 '여기서도 얼마든지 갖다드릴 수 있습니다'라며 한사코 말렸다. 선생이 '이 사람아, 냉면은 뜨끈한 삿자리에 앉아 먹어야 맛이 나지'라고 짐짓 나무라자..."(143쪽)
우여곡절 끝에 한국은행은 지난해 10만원권 화폐의 얼굴로 백범을 선정했다. 그러자 10만원권의 발행이 연기되는 새 우여곡절이 시작됐다. 백범은 여전히 역사의 질곡을 모두 벗어버리지 못한 위인이다. 저자는 그저 담담하게 이런 말로 글을 마무리한다. "새삼스레 회고록을 내는 것은 내가 살아온 일을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모신 백범 선생의 모습을 나 스스로 기억하고 싶어서다… 그분이야말로 진정 이나라의 지도자였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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