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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정책 '빈곤층 양산' 복지정책 '구제' 엇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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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정책 '빈곤층 양산' 복지정책 '구제' 엇박자

입력
2009.01.08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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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노동정책이 일자리 수 늘리기에 급급해, 일하면서도 빈곤해질 수밖에 없는 근로 빈곤층(working poor)을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빈곤층의 생계를 구제해야 할 복지정책은 경제논리에 밀려 실종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 불안한 일자리로 실업률 방어될까

정부는 비정규직을 늘려서라도(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공기업의 좋은 일자리를 자르는 대신 인턴을 채용해서라도(69개 공기관 2만명 감축 및 인턴 1만명 채용), 노인들의 최저임금을 삭감해 저임금의 노인 일자리를 늘려서라도(60세 이상 최저임금 삭감) 경기침체에 따른 전체 일자리 감소를 줄여보겠다는 계획이다.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라도 늘리는 게 그래도 실업 상태보다는 낫지 않냐는 취지이다. 그러나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사용기한을 연장하고, 최저임금을 낮춘다고 해서 이런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근거가 없다"면서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기업의 고용 규모는 경기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60세 이상 고령자의 최저임금을 삭감해서 기업이 이들을 더 많이 고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에 대해서도, 경기침체 속에서 임금 몇 푼 적게 줄 수 있다고 내보낼 사람 안 내보내거나, 더 많이 고용하지는 않을 거라는 지적이 많다.

오히려 청소용역 등 40~50대가 많이 차지하는 최저임금 수준의 일자리를 60대로 대체하는 효과만 가져올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근로 빈곤층만 늘어날 것

전문가들은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를 사실상 확산시키게 될 정부의 노동정책이 외환위기 이후 대두한 근로자들의 빈곤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현재 빈곤층 10명 가운데 3명은 일을 안 하거나 못해서가 아니라,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일자리가 워낙 불안하고 임금도 적어서 빈곤상태에 처한 근로 빈곤층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06년 현재 상대적 빈곤층(전체 개인 소득을 일렬로 정리했을 때 딱 중간에 위치한 중위소득의 50%에 미달하는 사람) 가운데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30.6%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임시직과 일용직 등 비정규직이 55.9%로 가장 많고, 자영업자가 26.1%를 차지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문제가 근로빈곤 문제의 핵심인 셈이다.

이병희 연구위원은 "1990년대 중반까지 감소하던 상대적 빈곤율이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것은 비정규직 확산 등에 따른 저소득층의 실질소득 감소 때문"이라며 "특히 대량실업 문제가 해소된 이후에도 비정규직의 근로 빈곤층 비율이 높아지면서 상대적 빈곤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번 저임금 일자리에 들어서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노동연구원이 근로자 8,861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첫번째 일자리가 저임금 일자리였던 근로자 가운데 일자리 이행과정에서 저임금 상태를 벗어난 근로자는 27%에 불과했다.

윤윤규 연구위원은 "특히 청년층과 고령층, 여성 근로자일수록 저임근로?營퓸呑瑛珦蛋慕菓營퓸?'의 돌고 도는 '회전문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말했다.

■ 복지는 경제논리에 실종

노동정책이 빈곤층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정작 복지정책은 여전히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노출하고 있다. 복지부는 올해 최악의 경기침체가 예상됨에 따라 기초생활수급자 기준을 완화해 5만여 명에게 추가로 생계비를 지급하는 한편, 휴ㆍ폐업을 하는 자영업자에 대해서도 긴급지원제도를 통해 생계비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당초 복지부가 약 60여만 명의 빈곤층을 정부 보호망에 포함시키기 위해 추진했던 한시보호제도는 재원 문제 등을 우려한 기획재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추후 경기가 악화할 경우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는 수준으로 후퇴했다.

설령 한시보호제가 도입되더라도, 작년 말 기준 523만 명에 달하는 최저생계비 이하 국민들에 대한 복지 커버리지가 현행 30%에서 40% 정도로 올라가는 것에 불과하다. 여전히 60%는 사각지대인 셈이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동시장에서 저임금을 용인하고 구조화시키면서 이를 복지로 보조하는 시스템에서는 빈곤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다"며 "노동시장에 내재된 빈곤유발 요인부터 바로 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지하철역 청소 비정규직 박연자씨

"몸이 부서져라 일했는데 빚만 늘어가네요."

박연자(59ㆍ여)씨는 매일 밤 8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지하철역을 청소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2002년부터 7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지만 아직도 수입의 절반 이상은 빚을 갚는데 쓰인다.

박씨가 역사에서 하는 일은 60kg에 육박하는 고압세척기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계단과 복도 돌을 갈고, 철로의 기름때를 닦아내는 것. 지난해는 일하다가 오른쪽 어깨 인대가 모두 끊어져 사흘에 한 번씩 병원신세를 지지 않으면 일할 수 없는 몸이 됐다.

병원비까지 늘어나자 인근 교회 목사한테서 300만원을 빌렸고, 이 돈을 갚을 능력이 안돼 같이 근무하는 청소반장에게서 200만원을 추가로 빌렸다.

쉬는 날도 없는 박씨가 지난 달 번 돈은 110여 만원. 기본급은 언제나 최저 임금이다. 그나마 야간조라 야근수당이 붙어 이 정도다. 구체적인 내역을 물어도 그는 잘 몰랐다. "이번 달에 좀 더 줬다는데 월급명세서를 구경한 적이 언젠지….

그런 것 달라고 하면 까다롭다고 눈밖에 나요." 다행히 두 달 전부터는 구청에서 노인 일자리로 제공한 공동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40여 만원을 더 번다.

반면 박씨가 12월에 지출한 내역은 어림잡아도 190만원에 이른다. 대출상환 72만원, 교회에서 빌린 돈 30만원, 서울에서 가장 싼 집이라는 월세 방값 10만원, LPG가스 12만6,000원, 생명보험료 16만원, 목욕비 13만원, 병원비 5만원, 수도 전기 등 공과금 7만원, 식비 20만원, 교통비 2만원, 아들과 돼지고기 외식 3만원. 목욕비가 많이 드는 이유는 청소 후 온몸이 세제로 뒤범벅이 되는데 집에 목욕시설이 따로 없어 매일 대중목욕탕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모자란 돈은 어디선가 빌릴 수밖에 없다. "열심히 일한 건 맞는데 월급 다음날이면 손에 돈이 없으니 희한한 일이지요." 임대주택에 들어가기 위한 주택청약대금도 물가가 급등했던 지난해 7월 이후 넣지 못했다.

살기가 어려워 식당 허드렛일, 종이봉투 손잡이 끼우기(1,000매에 7,000원), 경로당에 밥해주기(월 20만원), 무가지 신문 접기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래도 대학생 아들 뒷바라지는 불가능했다. 우선 군대에 다녀오라고 했지만 돌아온 뒤에도 등록금은커녕 두 식구 먹고 사는 일도 빠듯했다.

아들은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신문 800부를 돌려 한 달 28만원을 벌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나 학원이나 번듯한 자습서도 없이 공부하다 지난해 결국 포기하고 일산의 한 자전거 수리점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했다.

"학생회장에 대학에서는 동아리 대표까지 하던 똑똑한 아들이었는데 일터에서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더라고요." 자식 얘기가 나오자 박씨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얼마 버는지 얘기도 안 해요. 제가 용돈 주면 못 이기는 체 받는 것을 보니 고시원비와 사이버대 수강비만 내도 아슬아슬한 가봐요."

이런 그에게 비정규직 기한 연장 소식은 무덤덤하다. 어차피 용역회사는 2년마다 바뀌었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을 꿈꾼 적도 없다. 요즘 같으면 쫓아내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일하다 다친 이후로 회사는 "옆 사람한테 피해주지 말고 얼른 나가라"는 말을 대놓고 한다.

대신 '고령자 최저임금 삭감' 법안 통과는 두렵다. 새해부터 박씨도 고령자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힘든 일 하려고도 안 합니다. 들어와서도 한 두 달 만에 그만둬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전부 내 또래인데, 우리를 못살게 하면 그 일은 누가 하려고 그런답니까"라고 항변했다.

"이 나라 비정규직에게는 내일이 없습니다"라며 한숨을 쉬는 박씨. 비정규직으로 살면서 일곱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그는 "이제 죽을 힘도 없어 살아야겠다"고 말했다.

글·사진=김혜경기자 thanks@hk.co.kr

유병률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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