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F때도 빛난 위기관리 능력…오뚝이의 반전 기대하시라"
하나금융지주에 2008년은 쉽지 않은 한해였다. 지주사 출범 이래 가장 시끄럽던 1년이었다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 중 태산LCD와 맺은 환헤지 파생상품 키코(KI-KO)의 부실문제는 하나금융그룹 전체를 위기로 몰아가는 듯했다. 키코는 원ㆍ달러 환율이 계약한 일정구간보다 높아지면 가입기업이 불리한 환율조건에 계약금액의 2~3배를 팔아야 한다. 원ㆍ달러 환율이 급등세를 보이면서 계약구간을 넘어서자 태산LCD는 파생상품 평가손실이 800억원에 다다르면서, 결국은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고 말았다. 태산LCD의 도산으로 하나은행은 거액의 평가손실을 입었다.
이에 따라 하나금융지주의 현재 주가는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작년 초 4만9,000원에 비해 절반 이상 빠졌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6배 수준. 하나금융지주 주가가 그룹이 보유한 자산가치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 우리, 신한을 비롯한 금융권 4강 구도에서 점점 밀린다는 평가를 받아온 하나금융이 다시 한번 도약할 것인지, 아니면 중위권으로 밀려날 것인지 큰 갈림길 앞에 섰다. 하나금융그룹의 운명은 위기 때마다 위력을 발휘해온 김승유 회장의 리더십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할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기관리 전문가 김승유 회장
작년 하반기 국내외 언론과 신용평가회사들은 잊을 만 하면 하나금융 위기설을 주장했다. 한때 태산LCD와의 파생상품 계약으로 인한 손실 외 더 중대한 부실이 있다는 소문이 시장에서 사실처럼 받아 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금융지주 직원들은 이상할 정도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실제로 태산LCD 건 외의 특별한 부실요인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김 회장에 대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하나금융지주 관계자는 "과거 IMF 외환위기, SK네트웍스 사태 때에는 이보다 더 힘들었지만 결국 김 회장을 중심으로 이를 극복하고 더 큰 기회로 삼았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SK네트웍스(옛 SK글로벌)의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이 발생했던 2003년은 실로 김승유 회장에게 잊지 못할 한해였다. 은행 주가가 7,000원까지 곤두박질 치는 등 SK네트웍스의 주채권이었던 하나은행에게 더할 수 없는 시련이기도 했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김승유 회장의 위기관리 능력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각인시킨 계기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일단 주요채권단 8개 은행으로 공동대책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과거 주채권은행이 누렸던 정보의 독점으로 인한 이익을 과감히 포기하고 채권단간에 모든 정보를 공유했으며, 이를 통해 적극적인 사전사후 협조를 이끌어내 모범적인 구조조정의 기틀을 마련했다.
당시 김 회장은 주채권은행장으로서, 위기 초기단계부터 채권금융기관장과 여러 차례 회동을 갖고 금융당국과 긴밀한 협조아래 사태를 조기 수습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또, 현금채권매입(CBOㆍCash-Buy Out)이라는 선진적 구조조정 기법을 도입한 한편, 과거 국내 채권금융기관보다 월등한 대우를 받았던 해외채권단에 대해 채권자 동등대우원칙을 관철시키기도 했다.
김 회장 주도로 힘들게 결의된 워크아웃 이후 SK네트웍스는 3년 반만에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했다. 이는 채권단과 회사의 공동노력이 성공을 거둔 모범사례로 기억되고 있으며, 국내 워크아웃 사상 국내외 채권단이 동등한 대우 속에 시장원리대로 처리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IMF 외환위기 당시 충청은행 인수와 보람은행 합병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꾼 김 회장은 5년 후 다시 하나은행과 거래기업을 모두 위기에서 건져냄으로써 최고경영자(CEO)의 위기관리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한번 보여줬다.
리더십으로 불황 극복한다
김 회장에게도 올해는 결코 녹록치 않은 한해가 될 전망이다. 세계 금융위기가 실물부문으로 빠르게 전이됨에 따라, 올해는 세계 주요 선진국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역시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서 은행의 동반부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김 회장은 "올해엔 게임이 끝나는 게 아니라 게임의 법칙이 바뀔 뿐이며, 오히려 하나금융그룹에는 도약의 한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 회장은 "이제 양이 아니라 질이 승부를 가르는 시대, 내실 있고 준비된 주체가 불황을 극복하고 강자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다시 오고 있다"고 전망했다.
일례로 다른 은행들이 한때 호황이었다가 이젠 구조조정 대상으로 전락한 조선업, 건설업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덩치를 키운 반면, 하나은행은 이들에 대한 부실자산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내년이 도리어 호기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한 단계 도약을 위해 관리혁신과 조직개혁을 통해 위험관리를 강화하라고 전 임직원들에게 주문했다. 하나금융그룹은 은행권에서 처음 도입한 BU(비즈니스 유닛: 사업별 팀제)별로 위험관리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예전에는 영업팀 따로, 위험관리팀 따로였다면, 이젠 영업팀장이 위험관리까지 책임지게 돼 다양한 금융위기 형태에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하나금융 관계자는 설명했다.
하나금융그룹은 도약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육성과 신사업 분야에 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다. 김 회장은 "매년 인력개발 예산을 증액해온 하나금융그룹은 올해도 인력 예산만큼은 감축하지 않을 것이며, 향후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 금융규제 완화에 맞춰 새로운 수익모델 개척에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 조기욱 하나금융지주 부사장
"올해 하나금융그룹의 전략은 한 마디로 '실력과 기회포착의 경영'입니다. "
조기욱(52ㆍ사진) 하나금융지주 부사장은 "최근 하나금융그룹이 위태롭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오히려 올해는 하나가 도약하는 한해가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실력을 미리 쌓아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실력 축적
조 부사장이 밝힌 첫번째 실력은 바로 '자금력'이다. 정부는 최근 각 시중은행에 1월말까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기본자기자본비율을 9%대까지 높이라고 권고했지만, 작년 9월말 현재 하나은행의 기본자기자본비율은 7.43%에 그쳤다. 이에 따라 하나금융지주는 회사채 및 후순위채 발행, 해외자금조달 등을 통해 1월말까지 최소 2조원 이상의 자본을 확충할 계획이다. 그는 "자본확충은 정부 권고 때문만은 아니다"며 "올해 다가올 기회를 잡기 위해 선제적 자본확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번째 실력은 '조직혁신'이다. 그러나 단순히 사람 수를 줄이거나 임금을 깎는 '양적' 구조조정은 답이 아니라고 밝혔다. 조 부사장은 "은행이 원래 보수적이기도 하지만 원래 우리처럼 1만명이 넘는 조직은 잘 안 움직이기 마련"이라며 "그러나 양적 구조조정은 1회성일 뿐 경쟁력을 강화시켜주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과에 따른 보상체계 도입', '위험관리 강화' 등 조직의 운영원리를 바꾸는 '질적'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기회 포착
그는 "위기 이후에는 시장 판도가 바뀌면서 새로운 승자가 나오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4대 은행권에서 최근 밀리고 있는 하나은행의 입지가 올해 뒤바뀔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조 부사장은 올해 국내외에서 모두 시장판도를 바꿀 기회가 생길 거라고 전망했다. 우선 국내에선 덩치만 크고 부실이 큰 금융회사가 도태될 것이므로 싼값에 이들을 인수할 기회가 생긴다는 것. 그는 "구조조정 대상인 해운, 건설, 조선 비중이 4대 은행 중 하나가 가장 작다"며 "만일 올해 경쟁사가 100을 손해 본다면 하나는 25 정도만 손실이 날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는 투자은행(IB) 사업에서의 기회다. 향후 2, 3년간 국내외에서 엄청난 구조조정 후폭풍이 일어날 것이므로, IB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 조 부사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IB영업을 하려면 글로벌 감각ㆍ인맥이 필수인데, 그런 면에서 김승유 회장의 능력은 다른 회장들에 비해 탁월하다"며 "김 회장은 유창한 영어실력과 함께 JP모건, 골드만삭스 등의 회장들이 만나자고 청해오는 몇 안 되는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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