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내 대형 할인점 홈플러스 1층 계산대. "영수증 확인하시구요. 할인카드는 없으세요?" 쉴새 없이 밀려드는 손님들을 낭랑한 목소리와 밝은 미소로 맞는 중년 여성 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홈플러스 계산원 장은미(40)씨다. 정확히 514일의 파업을 거쳐 지난달 20일 복직한 옛 이랜드 노조원 180명 중 한 명이다. 하얀 이를 보이며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는 그를 보면, 과연 500일 이상 싸운 노조원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장씨는 "어떻게 돌아온 일자리인데요. 새해에는 일할 맛 나는 직장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옆 계산대에서 일하던 동료들이 "장은미씨 별명 알려 드릴까요? '미소 짱'이에요. 미소 짱!"이라고 말하자 계산대 주변이 웃음 바다로 변한다.
장씨는 "힘든 파업 때 잘 웃는다고 동료들이 붙여 준 별명"이라며 "일터로 돌아 왔으니 이제 미소를 손님들에게 돌려 줄 차례"라며 또 한번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곧장 아이들 자랑이다. 수학을 잘하는 큰 아들(중2), 그리고 더 없이 귀여운 막내 아들(초등6)의 이름이 계속 나온다.
2004년 5월 장씨가 할인점 계산원이 된 것도 두 아들의 학원비라도 벌어보자는 마음에서였다. 대학 졸업장이 있어도 10년 동안 가사만 돌보던 30대 중반의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학습지 교사나 음식점 종업원, 할인점 계산원 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할인점 계산원은 높은 집중력과 친절을 요하는 일. 그만큼 피로도 많이 쌓인다. 그런데도 장씨는 2년 여 동안 3교대 근무 중 가장 고되다는 저녁 근무를 도맡아 했다. 저녁 근무자에게는 회사에서 택시비 3,000원이 보조금조로 지급됐기 때문이다.
밤 12시 퇴근할 때는 상암동에서 망원동 집까지 30분 길을 걸어 다녔다. 몸은 언제나 파김치였지만 110여 만원을 받는 월급날 아이들에게 옷과 학용품을 사 갈 때는 가슴이 뿌듯했다.
하지만 2006년 봄 다니던 할인점에서 막내에게 주려고 만원짜리 운동화를 사던 날. 정규직은 5% 할인혜택이 있고, 비정규직인 그에게는 혜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500원 차이였지만 장씨는 큰 상처를 받았다. 그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500원의 그 차별이 얼마나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지"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지난해 11월 14일 '비정규직 아줌마 노조'의 대명사였던 이랜드 노조는 새 주인 홈플러스와 노조원 180명 복직에 합의했다. 비록 다시 비정규직이지만 무기한 계약 조건이다.
지도부 12명이 스스로 복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희생을 결단하고 이를 회사가 전격적으로 받아들인 결과였다. 복직의 기쁨은 컸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한 12명의 이름은 늘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다.
그 만큼 새해를 맞는 그의 각오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힘이 되어 준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의 빚을 갚아야 한다. 그리고 새해에는 전세 집도 넓혀 가고 싶다.
부쩍부쩍 크는 아이들 때문이다. "큰 아이는 서너 달 사이에 10㎝는 큰 것 같아요. 차곡차곡 모아서 좀 더 큰 방이 있는 집으로 옮겨야죠." 생활인으로서 그의 새해 소망은 이처럼 평범했다.
직장에서는 화합이다. 이랜드 노조 출신과 신규 직원들간에 조화를 이뤄, 다니고 싶은 직장을 만드는 게 목표다. "이렇게 저렇게 나뉘지 않고 서로 배려하고 어울리다 보면 다닐 맛 나는 직장이 되지 않겠냐"고 했다.
더 큰 새해 소망을 묻자 그는"새해에는 경제사정이 좋아져서 일자리가 많이많이 생기고 비정규직도 없어졌으면 좋겠어요"라며 '미소 짱'의 웃음으로 답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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