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신년화두로 '부위정경(扶危定傾)'을 골랐다. '위기를 바로잡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뜻으로 <주서(周書)> 의 '태조부위정경위권진주(太祖扶危定傾威權震主)', 즉 '태조가 위기 상황에서 나라를 안정시켜 위엄과 권세가 왕을 떨게 했다'는 대목에서 따왔다고 한다. 주서(周書)>
중국 고대사에 밝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그 뜻을 곧바로 담아 새기기 어렵다.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뜻에 부합한다는 설명은 쉽지만, 일반적 언어감각상 나라를 세운 왕을 가리킬 '태조'가 왕을 떨게 했다는 말이 아리송하다.
■'태조'는 북주(北周ㆍ557~581년)의 기초를 닦은 선비족 출신 우문태(宇文泰ㆍ507~556년)를 가리킨다는 청와대 홈페이지의 설명으로 이런 의문이 씻겼지만 새로운 의문이 싹텄다. 우문태는 북위(北魏) 효무제(孝武帝)가 대승상 고환(高歡)을 제거하려다 실패해 쫓겨나자 그를 보호하지만 나중에 살해하고 문제(文帝)를 즉위시켜 서위(西魏)를 세운다. 대승상에 오른 그가 조직과 제도를 정비해 국력을 키운 것이 바로 '부위정경'이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해 아들 우문각(宇文覺)이 억지로 제위를 물려받아 마침내 북주를 세운다.
■같은 사자성어라도 '동서남북'처럼 한자 넷의 소리와 뜻을 단순히 모은 게 아니라 역사적 배경을 가진 고사성어라면 말 자체의 뜻에 덧붙어 그 배경까지 함께 전달된다. 그런데 우문태의 외손자인 당(唐) 태종의 지시로 씌어진 <주서> 가 그의 행적을 미화했지만, 일반적 윤리감각에 비출 때 '태조'는 국가적 혼란을 틈타 세력을 구축하고, 그 힘으로 임금을 조롱하다가 죽이기까지 하고, 꼭두각시 임금을 내세워 국정을 농단한 인물이다. 그를 칭송한 '부위정경'의 배경으로 보아 어떻게 이 말을 국정 지향점으로 삼을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주서>
■올해도 그랬지만 사자성어로 된 신년화두는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고른다. 일반인의 감각과 동떨어지기 쉬운 이유다. 애초에 어려운 한자로 신년화두를 삼겠다는 자세부터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덤 속에 들어간 말을 억지로 끄집어 내다보면 아무리 번쩍거렸던 말이라도 음습한 기운을 띠고 있게 마련이다. 그런 일은 교수신문이나 성균관에 맡기면 그만이다. 정부가 굳이 신년화두를 찾겠다면 국민의 귀에 쏙 들어올 말을 골라야 한다. 우리말이라면 더욱 좋다. '희망과 용기'면 어떻고, '처음처럼'이나 '황소걸음'이면 또 어떤가.
황영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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