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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위기에 빛난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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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위기에 빛난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입력
2009.01.08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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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질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이젠 소형차로 질주하라"

현대ㆍ기아차그룹은 지난해 12월 초 경기 화성에서 국내ㆍ외 21개 생산공장 및 판매ㆍ서비스 부문의 품질 담당자 1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글로벌 판매 침체에 따른 대응 및 품질 전략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자동차 품질 평가의 대명사인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제이디 파워'의 임원도 참석했다.

현대ㆍ기아차그룹의 '품질 맨'들이 이틀 간이나 한 자리에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인 것은 그간 위기극복 과정에서 품질이 핵심 요소임을 절실히 체험한 탓이다.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차는 당시 소형차 '액셀'로 자동차 본 고장인 미국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쏘나타'(1989년), '엘란트라'(1991년) 등 준중형급 이상 신형차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 어느새 '현대차=저품질=싸구려 차'라는 인식이 자리잡은 것이었다.

정몽구 회장은 1998년 현대ㆍ기아차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품질경영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당시 미국 딜러들은 그를 만나 "좋은 차를 만들어 달라. 못 팔아 먹겠다"며 아우성을 쳤고, 정 회장이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게 수행 임원들의 회상이다. 현대차가 날개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추락할 위기에서 정 회장은 '품질'에 모든 것을 걸기 시작했다.

과거 현대정공과 현대자동차써비스 경영을 통해 품질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상황이 나쁜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정 회장은 즉각 행동에 돌입했다. 세계 자동차시장에 영향력이 가장 큰 제이디 파워에 현대차의 컨설팅을 의뢰했다. 화성에서 열린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의에 제이디 파워 임원이 이례적으로 참석한 것도 이런 인연에서다.

정 회장은 이후 생산, 영업, 애프터서비스 등 부문별로 나눠져 있던 품질관련 기능을 묶어 품질총괄본부를 발족시켰고, 매달 품질 및 연구개발, 생산담당 임원들을 모아놓고 품질관련 회의를 주재했다. 시중에서 판매 중인 자동차의 문제점을 점검하는 것은 물론, 개발 중인 차에 대해서도 실무자들과 함께 꼼꼼히 챙기며 품질 개선방안을 하나하나 지시했다.

이런 노력이 지속되면서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SUV '싼타페'가 2001년 미국 소비자 만족도 1위에 올랐고, 2004년엔 제이디 파워 신차 품질 평가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정 회장의 품질경영 '고집'에 대해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기아차 '오피러스' 수출을 앞둔 2003년 8월, 정 회장은 현대ㆍ기아차 기술연구의 메카인 남양연구소를 방문해 오피러스의 주행 성능을 시험했다. 이 과정에서 'Whine Noise'('윙'하는 미세 소음)가 들리자, "소리를 잡아라"는 특명을 내린 것이다. 연구소에는 당장 비상이 걸렸고, 전 연구진이 밤을 새며 소음 잡기에 나섰음은 물론이다. 이 때문에 수출이 예정보다 40여 일이나 늦어졌지만, 회사 임직원들에게 품질의 중요성을 뚜렷이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정 회장은 매년 신년사에서도 품질경영을 강조한다. 2005년 신년사에서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믿고 탈 수 있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며 그 기본은 품질"이라라고 역설한 데 이어, 2006년에도 "품질은 제품의 근본적인 경쟁력인 동시에 고객의 안전과 감성적 만족에 직결되는 요소이며 우리의 자존심이자 기업의 존재 이유"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회장의 품질경영을 바탕으로 현대ㆍ기아차는 이제 세계 5위의 자동차그룹으로 성장했다. 1968년 매출액 5억원, 종업원 590명으로 시작한 현대차가 창사 40주년을 맞은 올해 연간 260만대 이상을 판매하는 매출액 31조원, 종업원수 5만5,000명의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불황 여파로 자동차산업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대표적인 내구소비재인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품질의 차라도 지갑을 닫는 소비자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정 회장은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한 화두로 최근 '소형차 개발'를 제시했다. 사실 현대ㆍ기아차가 그간 중ㆍ소형차에 비중을 두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갈수록 친환경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는 데다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이 급격히 소형차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열린 글로벌 연구개발(R&D)센터 회의에서 "고연비, 고품질, 고급디자인을 갖춘 경쟁력 있는 소형차 개발을 한층 더 강화해야 한다"면서 "지금 어렵다고 신기술에 대한 투자를 줄인다면 미래 성장을 장담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올해 핵심 경영전략은 친환경 소형차 개발을 통한 난국 타개다. 이미 무너지고 있는 미국 '빅3'와 잘 나가는 도요타에서 보듯, '작지만 강한' 소형차 개발은 필수적이다. 일?자동차 업계는 과거 1ㆍ2차 석유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기에도 소형차 경쟁력 강화를 통해 세계시장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를 가졌다.

현대ㆍ기아차는 현재 47%인 소형차 비중을 더 확대하는 한편, 올해 하반기 '아반떼 하이브리드카' 양산을 시작으로 친환경 소형차 개발에 전력을 다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적극적인 R&D투자 ▦고객 최우선 경영 ▦협력업체와의 상생경영 ▦글로벌 인재 육성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선정, 전사적인 공격 경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정몽구 회장이 내놓은 '소형차 역량 강화'가 앞으로 어떤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 박홍재 자동차산업연구소 소장

"올해 자동차업계는 '생존 경쟁'의 한 해가 될 것이다. 자동차 판매량은 작년보다 더 줄고, 직원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현대ㆍ기아차그룹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의 박홍재(46) 소장(상무)은 올해 자동차산업을 상당히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사느냐, 죽느냐'의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세계의 시장으로 불렸던 중국마저도 반토막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박 소장은 "예년에 1,600만~1,800만대 선을 유지하던 미국의 자동차 판매규모가 지난해 1,300만대 초반까지 떨어졌고, 올해에는 더 줄어들 것"이라며 "미국 '빅3'를 비롯한 세계 자동차업계가 지각변동을 경험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위기 극복을 위해 정몽구 회장이 강조한 소형차 집중 전략에 공감을 표시했다. "대부분의 자동차업체들이 지난해 글로벌 경기침체를 경험하면서 소형차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문제는 어떻게 원가를 절감하면서 좋은 품질의 소형차를 만드느냐는 것이다."

박 소장은 도요타자동차의 '카이젠'(개선) 활동을 원가 절감의 본보기로 들었다. 카이젠은 세계 최고의 자동차기업으로 불리는 도요타의 대표적인 성공 비결 중 하나. "카이젠의 내용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그는 원가 절감을 위해서는 노사가 하나가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 직원이 현장에서 항상 무엇인가를 개선하려는 사고방식을 가지려면 노조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뭔가 개선 의지를 보이는 직원들조차 노조를 의식한 탓에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게 박 소장의 생각이다.

그는 "노사가 하나라는 생각으로 카이젠에 적극 나서면 자사 제품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결국 경영실적 개선과 함께 직원들의 고용안정과 임금상승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사 측도 원가 절감을 통한 과실이 직원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확신 시켜줘야 한다.

다행히 국내 자동차업계 노조가 최근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고무적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를 계기로 한 생산라인에서 2종류 이상의 차를 같이 생산하는 혼류생산과 근로자를 각 공장의 자동차 생산량에 따라 자유롭게 이동시킬 수 있는 전환배치가 이뤄지고 있다. "이를 계기로 올해 노사가 한 몸이 된다면 저원가 고품질의 소형차를 만들어 도요타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박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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