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 새해가 밝았다. 소띠 해는 일하지 않으면 하나도 못 얻는 해라고 한다. 소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근면, 성실, 우직하게 일할 것이 기대되는 한 해인 것 같다. 소를 생각하면 열심히 쟁기질하는 우리 어르신들의 모습이 생각나는 것은 나만의 특이한 연상일까? 기축년 새해 아침 우리 시대의 어르신을 생각한다.
다양한 욕구ㆍ이질성 인식해야
어렸을 때 즐겨 부르던 동요 중에 <자전거> 가 있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저기 가는 저 노인 꼬부랑 노인, 우물쭈물 하다가는 큰일 납니다." 요즈음 가사에는 연령차별적 색채가 없어졌지만 적어도 내가 어렸을 때는 이렇게 불렀다. 자전거 경적소리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는 허리 굽은 굼뜬 노인네. 이것이 내 어릴 적 노인의 모습이다. 자전거>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80대에 오토바이를 몰면서 젊음을 과시하는 어르신이 있는가 하면 70대 대통령도 있다. "난 벌써 백 살인데…이백 살까지 살라고 해야지" 하는 TV광고 속 어르신처럼 건강하게 백 살을 넘기는 분도 있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노년> 의 서문에서 언급한 금지된 주제 '늙음', '노년'은 이제 그 자체에 대한 부정을 넘어 어떤 노년이냐, 어떤 늙음이냐로 관심이 옮겨졌다. 노년>
노인 관련 가장 큰 이슈는 그 수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2008년 7월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501만6,000명, 총인구의 10.3%다. 2018년에는 14.3%로 '고령사회'에, 2026년에는 20.8%가 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증가는 가히 초고속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극명해지는 사실은 노인이 동질 집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동ㆍ청소년기 약 20년, 청ㆍ장년기 20년, 중년기 20년. 반면 현존하는 최고령을 110세로 보면 노년기는 50년 이상이다. 어떻게 50여 년의 인생주기가 같을 수 있겠는가? 때문에 외국에서는 노인을 65~75세 '초(初)고령(young old)', 76~85세 '중(中)고령(middle old)', 86세 이상을 '고(高)고령(old old)'으로 세분하고 있다.
초(初)고령자는 중년기 삶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할지 모르며 고(高)고령자는 사회와의 분리를 더 자연스럽게 수용할지 모른다. 또한 노화는 노년기 공통현상이지만 개인의 유전적 소인, 과거 생활사에 따라 개인차가 상당히 크다. 따라서 50년 세월 속에 펼쳐져 있는 이 시대의 노인들은 신체적ㆍ정신적 건강, 사회적 역할, 개인적 욕구 면에서 상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노인문제 해결에 있어 노인집단이 갖는 이질성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정년은 개인의 노화 정도나 욕구와 무관하게 60세 이상 대다수를 노동현장에서 내몰고 있다. 취약한 연금보장정책은 어르신의 삶의 자유를 제한하고, 원치 않는 가족의존을 강요하고 있다. 주거형태의 다양성 부족 또한 노년기 삶의 방식을 획일화시키고 있다.
선택 기회ㆍ인간다운 삶 보장을
청년기나 장년기 20년이 노년기 20년보다 더 가치 있다고 누가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노년기는 덤으로 사는 시간이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했던 목표지점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의 한 구간인 것이다. 구간 구간이 모두 소중하고 가치 있다. 이런 사실을 노인과 국민 모두가 인식할 때야 노인의 삶은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의 희생을 통해 청ㆍ장년의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하려는 우리의 시도를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르신들께 다양한 선택 기회를 제공하고 차별로부터 보호해야 할 것이다. 그 분들이 상황과 욕구에 따라 누구와 살지, 어디서 살지, 언제까지 일할지, 무엇을 하며 지낼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인간의 기본권 이야기다. "우리가 노인에게 설정하는 오늘의 조건이 바로 내일의 우리 조건" 이라는 보부아르의 명철(明哲)을 우리도 가질 수 있다면 어르신들의 인간다운 삶을 우리가 감히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홍순혜 서울여대 사회복지학전공 교수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