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모를 심고, 탈곡기로 볍씨를 털어내며, 잔류독성이 강한 농약을 뿌린다.' 초ㆍ중ㆍ고교 교과서에 나오는 농촌의 왜곡된 모습이다. 1970, 80년대 낙후된 농촌을 현재 모습처럼 잘못 묘사한 교과서들이 학생들에게 농업과 농촌, 우리 농산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농림수산식품부 의뢰로 연구, 발표한 '초ㆍ중등학교의 농어업ㆍ농어촌 및 식품산업에 대한 교과서 개정방안' 보고서를 통해 "교과서의 일부 잘못된 내용이 학생들의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연구원이 지적한 가장 큰 오류는 농약에 관한 잘못된 사실 서술과 잘못된 농촌 풍경 묘사 등 두 가지다.
흥진출판사의 중2 기술ㆍ가정 교과서는 채소와 곡식, 과일 등 농산물을 통해 농약이 사람에게 이동된다는 내용의 그림을 187쪽에 실었다. 두산출판사와 동화사의 중2 기술ㆍ가정은 '잔류독성이 강한 농약'이라는 표현을 사용, 실제 농산물에 농약이 남아 인체에 해를 주는 것처럼 오해할 여지를 남겼다.
고교 과학의 경우 지학사, 중앙교육 등 모든 출판사가 '생물 농축' 단원에서 살충제 DDT가 강물에 녹은 후 어류를 거쳐 결국 사람에게 고농도로 축적되는 것으로 묘사했다.
농약 잔류독성이 문제가 된 것은 30여년 전 일로, 현재는 안전하다고 봐도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 견해다. 임양빈 국립농업과학원 연구관은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는 농약은 최대 180일 안에 약효가 절반으로 줄고 일반 토양에서도 분해가 잘 돼 농산물에 농약이 남아 인체에 해를 주는 일은 거의 없다"면서 "특히 DDT는 1979년 사용이 금지됐는데 교과서에 실린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래된 농촌 풍경을 게재해 낙후한 이미지를 심어준 사례는 주로 고교 사회 교과서에 집중됐다. 교학사 교과서는 손으로 모내기 하는 장면, 법문사는 탈곡기를 이용해 추수하는 장면을 각각 11쪽에 실었다.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모내기, 추수 등 주요 과정을 이앙기, 컴파인 등 기계가 대신하게 돼 현재 농촌에서 수작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밖에 농업, 농업인이란 용어 대신 농사, 농부로 표현해 농업을 폄하하는 인상을 준 부분도 다수 지적됐다. 초등 5학년 1학기 사회, 교학사의 중2 과학, 법문사의 고교 사회 등 초ㆍ중ㆍ고교 교과서를 통틀어 10여건 발견됐다.
고교 과학 교과서를 쓴 한 대학 교수는 "현재 어떤 농약을 사용하는지 등 농촌 현실을 잘 모르고 과거 내용대로 교과서를 집필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합리적인 수정 이유를 제시한다면 내용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년 6월 교과서 수정요구를 취합해 12월 수정 여부를 발표하는 관행상 연구원이 지적한 오류는 1년 뒤에나 수정이 가능하다.
이번 연구를 맡은 농촌경제연구원의 최경환 연구위원은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초ㆍ중ㆍ고 학생들이 농업에 대해 올바로 알 수 있도록 교과서의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농법에 대한 부정확한 기술도 문제로 지적됐다. 국정교과서인 초등 5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에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농작물 사례로 오리농법 사진(88쪽)이 게재됐다.
그러나 포천의 농업인 김모(55)씨는 "오리농법을 하면서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경작자도 극소수 있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저농약 재배방법으로 보는 게 옳다"고 말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