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관가가 뒤숭숭하다. 이명박 정부의 공직사회 물갈이 시도 탓이다. 교육과학기술부와 국세청, 국무총리실, 농림수산식품부의 1급 관료들이 일괄사표를 낸데 이어, 통일부 국토해양부 문화관광부 국가정보원 등도 인적 쇄신 대상으로 거론된다.
새로운 인적구조를 통해 지난 정권의 좌파정책을 보수정책으로 바꾸기 위한 의도라고 전해진다. 경쟁과 효율을 중시하는 MB의 교육정책과는 달리, 평준화와 형평에 비중을 둬온 교과부 관료들이 물갈이 1순위로 떠오른 게 이런 해석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과연 좌파 정권이었나?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과거사 해체나 권위주의 청산 등 정치적인 측면에서 일부 진보적 색채를 띠었던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사회경제적으로는 갈수록 성장 잠재력이 약화하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하는데도 시장 기능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다, 부동산값 폭등과 소득분배 악화를 불러온 게 바로 참여정부다.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했다"는 비아냥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말로는 복지와 평등을 강조하면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앞장서 추진하고 친기업 정책을 펴는 등 신자유주의 정착에 심혈을 쏟았던 우파 정권이 아니던가. 학자들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참여정부는 시장 논리에 대한 지나친 낙관적 믿음 탓에 사회 각 분야의 양극화를 심화시켜 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노무현 정부의 금융정책은 최근 몰락한 미국식 금융시스템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었고, 이명박 정부 역시 이 노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금융경제연구소> " "노무현 정부는 5년 동안 경제위기를 알게 모르게 키워 왔고, 이명박 정부는 위기를 한 단계 더 증폭시키고 있다. 부동산 투기를 잡지 못한 것은 참여정부의 최대 실책이다. 금융경제연구소>
해결할 기회와 해법을 손에 쥐어줘도 문제 해결을 못했다.<김광수경제연구소> " 심지어 참여정부 출범에 관여했던 학자조차 "노무현 정부는 경제 민주화의 철학을 갖지 못했다. 좌파적 경제정책은 별로 없었고 오히려 우파적 정책이 더 많았다"라고 진단했다. 김광수경제연구소>
설령 참여정부에 일부 좌파적 요소가 있었다 치자. 그게 참여정부의 핵심에서 일했던 관료들을 내칠 명분이 될까? 솔직히 우리 관료들, 특히 경제부처 관료들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온 미국식 시장주의자 일색이다. 참여정부가 우파 정책을 편 것도 성장주의를 맹신하는 경제관료들이 사회경제정책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려면 결국 관료들이 움직여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이를 집행하는 관료들의 철학과 추진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정권 교체기마다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집권세력이 공직사회의 자율성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정권코드에 맞출 것만 강요해온 탓이다.
따라서 공직인사는 정권코드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오로지 성공적인 정책 추진을 위해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재를 배치한다는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참여정부에서 주도적으로 일했으니 물러나라는 것은, 그나마 옹색한 인재풀을 스스로 좁히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신년사에서 "공직사회가 먼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과거의 방식에 안주하기보다 현재와 미래의 트렌드에 대한 직관과 분석, 예측능력을 길러 선진 경쟁국과의 정책 경쟁에 뒤쳐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옮은 말이다. 공무원들을 정책 경쟁에 나서게 하려면 지금처럼 참여정부와 코드를 맞췄던 관료들을 솎아내는데 열을 낼 게 아니라, 이들이 정무직 장관 눈치보지 않고 책임감 있게 일할 수 있는 여건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고재학 경제부 차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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