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긴 외다리로 서 있는 물새가 졸리운 옆눈으로
맹하게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를
남해 앵강만 벽련마을에서 해 지는 풍경을 바라본다. 서울에서 유배온 별 하나가 일찌감치 노도 하늘 위에 떠오른 무렵, 동백숲과 시누대숲 사이로 난 샛길을 따라 지는 해를 배웅이라도 하듯 걷다보니 "해 지는 풍경처럼 아름다운 음악도 없다"고 한 드뷔시의 말이 떠오른다. 이 위대한 작곡가의 말이 실감나게 다가오는 곳은 역시 한 해가 저물어가는 바다 앞에서다.
세상의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이제 한 해 동안의 기나긴 여정은 바다만한 침묵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어쩌면 눈부신 것은 소멸일진저! 생동하는 소멸의 아름다움일진저! 해가 수평선 쪽으로 낮아지면서 바다가 더 빛난다는 것은 관찰과 통찰이 동시에 이루어진 드문 예에 속한다.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란 다가오는 어둠의 순간들을 충실히 살아냄으로써 우리 삶이 더 반짝일 수 있다는 장엄한 역설을 찰나에 보여준다.
그러니, 저 맹한 물새 발자국을 들여다보면 또한 알게 된다. 물새가 앞을 향해 걸어갈 때 그 발자국은 화살표 모양이 되어 뒤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 물새는 전진과 후진을 동시에 할 줄 안다는 것. 뜨지도 감지도 않은 반가사유상의 저 졸린 '옆눈'은 자신의 발자국처럼 정면과 후면을 동시에 끌어안은 채 빛과 어둠이 별개의 것이 아님을 넌지시 보여준다.
해가 저무는 풍경이 음악이라면, 이제 내 가슴은 수평선을 일현금 삼아 울리는 공명통이다. 이 여운을 좀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나는 저물어가는 순간들을 향해 한 발짝 더 걸음을 옮겨야 하리라. 그리고 비상하는 존재의 지나온 발자국과 '옆눈'을 생각해야 하리라. 남해 유자빛으로 물들어가는 해가 수평선을 퉁, 울리며 떨어진다. 하나의 현 위에서 수만 개의 음들이 파도를 일으키며 밀려든다. 남해 노도 앞바다 벽련마을 동백은 그 파도를 끌어 덮고 잠이 들면서 자신의 중심을 노을빛으로 찬찬히 물들여갈 것이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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