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 각국은 나름의 뉴딜정책을 발표하기 분주하다. 우리 역사에도 20세기 초 대공황 때보다 훨씬 전 불황을 이겨내기 위한 뉴딜정책이 있었다. 바로 정조의 수원 화성 건설이다.
정조는 화성 건설 때 부역 대신 임금 노동제를 선택했다. 국민의 의무로 성을 쌓는 게 아니라, 나라가 품삯을 주니 흉년에 갈 곳 없는 백성들이 몰려 들었다. 당시 정조는 다산 정약용에게 <기기도설(奇器圖說)> 이라는 책을 주며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기계를 개발하라고 했다. 우리 역사에 남은 발명품 기중기는 그렇게 탄생했다. 기기도설(奇器圖說)>
정조와 정약용의 공통된 생각은 쇠퇴하는 국력을 회복하고 헝클어진 현실로 고통 받는 백성들의 생활을 극복하는 과정에 과학기술을 활용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경제이론과 첨단기술을 중시하는 실학이라는 선지적 시각이 있었기에 그들은 조선의 중흥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비전과 통찰력이며, 그 가운데도 과학기술에 대한 안목은 절대적이다. 어쩌면 역사적 굴곡으로 기록될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을 통해 산업 전반의 경쟁 기반을 강화하고,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당장 위기를 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기가 지나간 뒤를 준비하는 것 또한 긴요하다. 금융 안정화, 경기부양과 같은 단기적인 대응과 동시에 불황 이후 미래를 대비하는 과학기술 투자를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외환위기 때 우리는 연구개발 투자와 인력을 줄여 장기적으로 연구성과가 떨어지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 산하기관 및 출연 연구기관들은 경영효율화를 통해 절감한 예산을 2,000여명의 인턴연구원 채용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 한 바 있다. 미취업 이공계 졸업자들이 산업체, 연구소, 대학에서 인턴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과감한 신기술 투자를 통해 차세대 녹색성장의 기반이 될 연료전지, 뇌과학, 나노 및 바이오 기술 등 미래 성장동력이 될 첨단기술과 이를 담당할 인력을 지속 육성해야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과학기술자들의 사회적 책무도 중요하다. 과학기술계가 축적한 연구역량을 토대로 어려운 산업계에 기술 지원을 통해 경제위기 타개에 솔선수범하고,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과학기술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 과학기술을 통해 국민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가 전달되어야 한다.
정약용의'식위정수(食爲政首·먹고 사는 문제가 정치의 으뜸이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세밑이다. 흉년에 당장의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내년 농사를 위해 종자를 더욱 소중히 지켰던 선조들의 지혜를 우리는 기억한다. 과학은 오늘날 경제강국 대한민국을 이끈 핵심 동력이자 미래의 먹거리를 위한 소중한 종자와도 같다. 과학기술이 지배할 미래사회를 내다보며, 오늘을 극복하고 내일을 도모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금동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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