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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하늘 등대' 대구항공무선표지소, 안병완·박정홍·최태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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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하늘 등대' 대구항공무선표지소, 안병완·박정홍·최태숙씨

입력
2008.12.29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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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바다에만 등대가 있는 건 아니다. 하늘 등대도 있다. 항공기의 안전운항에 필요한 방향 및 거리정보 신호를 공중에 쏘고, 지상의 관제탑과 항공기 조종석 간의 교신을 위한 중계소 역할을 하는 한국공항공사 항공무선표지소 사람들이 바로 '하늘길 등대지기'다.

대구항공무선표지소의 안병완(54) 소장, 박정홍(51), 최태숙(45) 과장을 만났다. 이들은 세상의 모든 번잡함을 피해 하늘과 맞닿은 산을 오르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그들의 삶과 일 얘기를 들어봤다.

비행(飛行)기의 비행(非行)을 막는다

4.2㎞의 산길을 4륜 구동 자동차로 기어올라 닿은 대구 산성상 정상. 해발고도 653m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오기 무섭게 항공무선표지소의 복잡한 항행안전시설과 기기들에 대한 설명이 쏟아진다.

"이게 전방향무선표지시설(VOR)이라는 놈인데, 이게 없으면 비행기도 '갈 지'(之)자로 비행할지 모릅니다. 옥상에 둥글게 놓인 51개의 무선 발신기가 정확한 항로를 직선으로 표시해주죠."(안 소장) "비행기 화면에 남은 비행거리와 시간이 나오잖아요. 바로 무선표지소의 거리측정장비(DME)와 전술항행표지시설(TACAN) 덕분입니다."(박 과장) "관제사와 조종사간 교신이요? 여기 관제통신장비가 없다면 어림도 없어요."(최 과장) 어깨를 으쓱이며 늘어놓는 설명엔 자부심이 넘친다.

요약하면 항공무선표지소는 항공안전의 전초 기지인 셈. 실제 1960년 국내에 부산항공표지소가 첫 설치된 뒤 안양 양주 부산 대구 포항 예천 제주 부안 등 전국 요소요소(9곳)에 항공기의 귀와 눈(무선표지소)이 늘어났다. 항행안전 수준이 크게 향상된 것이다. 더구나 많은 장비들을 국산화해 성능이 한결 좋아졌고, 부품 수급이 용이해져 응급상황 대처 속도도 빨라졌다.

'넓은 하늘에 무슨 길이 있고, 굳이 비행기가 안내 받아야 하나'는 궁금증이 생길 법하다. 하지만 지상의 도로만큼은 아니지만 하늘에도 '항로'(航路)라 불리는 엄연한 길이 있다. 흔히 바닷길로 불리는 항로와 구별해 '공로'(空路)라고도 불린다. 국내 영공에는 국제선 12개, 국내선 13개 등 모두 25개의 하늘길이 뚫려있다.

"하늘길 파수꾼을 족보에서 파낸답디다"

주로 밤에만 돌아가는 뱃길 등대와 달리 이곳은 365일 24시간 가동된다. 대한민국 영공엔 하루 1,200여대의 항공기가 쉴새 없이 지나다니기 때문이다. 밤 11시 이후 좀 뜸해질라치면 지상의 화물차처럼 화물기들이 어김없이 빈 시간을 채운다. 이로 인해 근무는 주간엔 3명, 야간엔 한 명이 자리를 지키는 3교대 방식이다. 사흘에 한번 꼴로 밤샘 근무를 한다.

그러나 쌓이는 건 피로가 아니라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라고 했다. 이들은 남들 다 노는 휴가철, 심지어 명절에도 전국민을 위해 '특별교통수송대책'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15년차인데 마음 놓고 회사 콘도를 이용한 적이 없다"는 박 과장의 푸념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예민한 시기에 신경을 못쓴 탓에 이제 내 자식이 맞나 싶을 정도로 대화가 안 되고"(안 소장) "집안 장손이 10년 넘게 제사를 못 챙겼더니 족보에서 제 이름을 빼겠다고 할 정도"(최 과장)다. 그래도 가족의 이해와 배려가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일이다.

정작 아쉬운 건 세상의 몰이해다. 그도 그럴 것이 "집사람도 남편이 '공항에 근무'하는 줄 알고 있을 정도"(안 소장)고 "매일 등산하는 걸로 비쳐 '명예퇴직 당했냐'고 묻는 친구들도 있다"(박 과장)고 했다. 하는 일이 비밀스럽다 보니 산에 야유회 온 걸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전국 9곳의 항공무선표지소 근무자가 50명이 채 안 되는데다, 전파방해를 피하기 위해 근무지가 죄다 산꼭대기에 있기 때문. 바다의 등대지기는 그나마 낭만이 짙게 배인 일화로 회자되지만 이들에 얽힌 얘기는 세상에 알려진 바도 거의 없다.

"군 생활만 벌써 두 번째"

대개 전자공학도 출신인 이들은 항행안전장비의 점검, 유지ㆍ보수가 주업무지만 언제 어떤 일이 터질지 알 수 없는 탓에 근무자 전원이 '전천후'가 돼야 한다. 이들은 이곳 근무를 '생애 두 번째 군 생활'에 비유한다.

설명을 들으면 납득이 간다. 수시로 후려치는 낙뢰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선 '전기기술자', 온도에 민감한 장비를 보호하려면 '보일러 혹은 에어컨 기사', 식사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니 '요리사', 막힌 하수구를 뚫고 지하수를 끓어올리기 위해서는 '배관공'이 돼야 한다.

특히 진입로 주변의 잡초와 쓰러져 길을 가로막는 나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예초기와 전기톱도 수준급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산불에 취약한 산 정상에 자리잡은지라 겨울엔 산 아래서 피어 오르는 연기에도 잔뜩 긴장해야 한다. 체력은 기본이다.

"우리가 바로 맥가이버"(최 과장), "다방면에서 내공을 쌓은 탓에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안 소장)는 너스레는 '전역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군 장병들의 자신감과 얼추 비슷하다.

군 예비역들이 그러하듯 무용담도 수두룩하다. 가파르고 구불구불 한 고갯길을 넘어 출근하는 덕(?)에 낭떠러지로 구른 자동차가 셀 수 없고, 눈이 1㎝만 쌓여도 고립무원이 돼 비상식량 소진 뒤 꿩을 잡아 연명하기도 했던 일화를 털어 놓았다.

세상의 등대지기들이 그러하듯 이들도 고독하다. 긴장의 연속이지만 한밤중에 산꼭대기에 홀로 남겨지다 보니 외로움과의 싸움은 이골이 나 있다. 더구나 이런 생활을 알아주는 이조차 별로 없어 간혹 소외감까지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천직(天職)이라 여기고 후회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우리가 쏘아 올린 무선신호 덕분에 하늘길 교통사고 한번 없었으면 됐지요." "텅 빈 하늘에 길 내는 것만큼 멋진 일이 어디 또 있습니까."

대구=글ㆍ사진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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