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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서구의 자멸' 종말이냐 진화냐… 기로에 선 서구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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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서구의 자멸' 종말이냐 진화냐… 기로에 선 서구문명

입력
2008.12.2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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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코치ㆍ크리스 스미스 지음/말글빛냄 발행ㆍ317쪽ㆍ1만5,000원

9ㆍ11 테러 직후 오사마 빈 라덴은 "서구문명의 가치관은 파괴되었다. 자유와 인권, 인간성을 상징하던 위엄있는 두 개의 탑이 무너져내렸다. 연기처럼 영영 사라져버린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는 과장된 정치적 선전일 뿐이다. 빌딩 두 개가 무너졌다고 문명이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서구의 자멸> 의 저자들은 테러 자체가 위협인 것이 아니라, 문명을 지탱해온 사상과 태도들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에 서구문명의 실상은 더 암울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80/20 법칙>의 저자인 리처드 코치와 영국 하원의원, 문화언론체육부장관을 지낸 크리스 스미스는 이 책 <서구의 자멸> 에서 북미와 유럽, 호주에 걸쳐있는 서구문명이 외부의 적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간직해온 성공 요인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해 자멸할지도 모른다고 예측하고 있다.

저자들은 서구문명을 지구상에 존재했던 수많은 문명 가운데 가장 번성하게 만든 요인으로 그리스도교, 낙관주의, 과학, 성장, 자유주의, 개인주의 등 6가지를 꼽았다. 이들은 이 6가지 핵심적인 신념과 행동패턴의 의미, 그것이 태동한 배경, 변천의 역사, 인류의 삶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고 현재 상태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을 밝혔다. 개인의 의무, 사랑에 중심을 둔 자기개선, 평등과 연민에 대한 헌신 등 그리스도교의 유산은 여전히 청신호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인들에게 보편적이었던 낙관주의는 쇠퇴했으며, 과학 발전의 과정에서 우주는 불확실하며 우리가 알 수 있는 목적이나 원리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과학의 권위는 약화됐다.

또 경제는 크게 성장했지만 지구의 생태균형은 심각하게 어지럽혀져 서구문명이 진화하지 않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면 그 가장 유력한 원인은 '생태적 자멸'이 될 것으로 진단했다. 개인주의가 사회의 부유하지 못한 구성원들에게 안겨주는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은 황신호를 깜박이게 한다. 서구인들의 냉소와 무관심으로 자유주의의 수준과 깊이가 사상 최저치에 가까운 것은 적신호다.

서구는 지금 냉소주의와 이기주의, 무관심, 권력의 재집중 등으로 종말로 가느냐 아니면 용기의 회복, 서구문화에 대한 확신, 유럽인들의 단결 등으로 진화의 길로 가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결론이다. 한국사회가 60년 동안 모델로 삼아온 서구사회를 전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책이다.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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