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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불법 다운로드 '재앙 부메랑'

입력
2008.12.2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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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개봉을 앞두고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열린 영화 '이터널 선샤인' 시사회에서 겪은 황망한 경험. 영화 상영 20분 가량이 지나자 뒤에 앉은 관객 한 명이 동료에게 속삭였다. "두 달 전에 이미 다운 받아 본 영화네." 잠시의 수근거림과 의자 들썩이는 소음을 만들어낸 뒤 두 사람은 이내 극장을 빠져나갔다.

다들 알겠지만 불법 다운로드로 때문에 영화계서 얼굴 구길 일들은 수도 없이 많다. 할리우드 주요 영화가 한국서 전세계 최초로 개봉하는 이유가 불법 다운로드 방지 목적에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 할리우드 대작의 기자시사회 때 직배사가 고용한 보디가드들이 기자들의 가방을 검색하는 풍경도 이젠 낯설지 않다.

간혹 영화 시사 중 적외선 안경을 쓴 직원이 객석의 기자들을 노려보기까지 한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할 때마다 불쾌하지만 어쩔 수 있나. 우리 사회 전체가 만들어낸 업보인 것을.

하지만 국내 영화제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듣자니 '이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 첫 소개되는 유명 작품이 상영 목록에 많을수록 영화제의 권위가 서기 마련.

각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들은 신선하고 질 좋은 '상품' 확보를 위해 세계의 각종 영화제를 발로 뛴다. 그러나 힘겹게 확보한 영화가 국내서 불법 다운로드가 된다면 김이 새기 십상이다.

한 영화제 관계자는 "영화를 선정할 때 파일공유사이트에 관련 파일이 떠 있는지 검색을 다 해본다"며 "욕심 나는 영화라도 불법 파일이 나돌면 상영 목록서 뺄 수 밖에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태국에서는 불법 다운로드를 소재로 한 영화까지 만들어졌다니 그 심각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불법 파일의 유통 과정서 벌어지는 살인극이 주된 내용인 이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지난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아메리칸 필름 마켓에서 큰 화제를 일으켰다고 한다.

저작권 보호에 있어선 우리보다 한 수위라 여겨지는 영국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켄 로치와 앨런 파커, 케네스 브래너 등 유명 감독들이 불법 다운로드를 규탄하는 공개서한을 영국의 유력 일간지 더타임스 16일자에 게재했을 정도다. 호환, 마마, 전쟁보다 무서운 재앙이 될 수 있는 불법 다운로드, 새해엔 근절되길 바라면 지나친 욕심일까.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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