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예견치 못했기에 '차붐 수원'의 천하통일은 더욱 극적이었다.
차범근. 그가 누군가. 1970~80년대 세계 최고리그였던 독일 분데스리가를 평정하고 돌아온 '갈색 폭격기'였다. 분데스리가 308경기 98골은 당시 외국인 선수 최다골이었다. 하지만 화려한 선수시절과 달리 지도자 차범근(55) 감독의 길은 순탄치 않아 보였다.
한때 18경기(컵대회 포함) 연속 무패행진을 달리다가 이천수 신영록 서동현 백지훈 이정수 등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연패에 빠져 9월초 3위로 추락할 때만 해도 '차붐 수원'의 재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화려한 선수 구성에도 불구하고 심한 기복을 보이며 승부처에서 매번 고비를 넘기지 못했던 지난 악운이 되풀이되는 듯 했다.
그러자 그는 배기종 최성현 최성환 등 2군 무명 선수들을 주전으로 내보내는 '모험'을 선택했다. "스타가 결국 이름값을 한다"고 믿었던 차 감독으로서는 엄청난 도박이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무명'들은 컵대회 우승과 정규리그 1위를 안겼고, 그 여세는 정규리그 챔피언까지 이어졌다. 수원 지휘봉을 잡은 2004년 첫 해 우승한 이후 3전4기 만에 정상 등극이었다.
K리그에서 '더블'을 달성한 것은 1997년 부산 대우, 1999년 수원, 2002년 성남에 이어 네 번째. 더블을 두 차례나 작성한 것은 수원이 처음이다. 차 감독은 정규리그 2회, 리그컵 2회, A3챔피언스컵 1회 등 총 5번의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지도자로서도 성공시대를 활짝 열었다.
특히 안정환(부산) 김남일(고베) 등이 떠나고도 예년과 달리 뚜렷한 스타를 보강하지 않은 가운데 '천하통일'의 위업을 이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연령대 주장제'를 도입하고 좀더 선수들에게 다가가 대화를 시도한 '작은 변화'가 '차붐 시대'를 여는 열쇠가 됐다.
"정신이 나갈 정도로 기쁘다"고 우승 소감을 밝힌 그는 고백했다. "나는 선수 때 벤치에 앉아본 일이 거의 없었고 다른 어떤 선수보다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늘 최고의 찬사를 받으면서 달려왔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가운데 굳어진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고정관념이 깨졌고 선수들을 보는 안목도 달라졌다."
한국이 낳은 '최고의 스타' 차범근은 어느덧 화려한 선수시절을 뒤로 하고 '최고의 감독'을 향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오미현 기자 mhoh25@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