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직성(驛馬直星). 소설가 박태순(66)씨는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
"고향 황해도에서 1948년 월남해서 장충단공원 근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 그런데 거기가 유곽촌이었어. 그런 빈민촌이 없었지. 늘 떠나고 싶었어. 하지만 막상 집 나서면 두렵고… 떠나고 싶은 욕망과 길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의 경계에 내 인생이 있었던 것 같아."
<나의 국토 나의 산하> 는 이 역마직성의 발바닥이 수십 년 톺아 디딘 이 나라 강산의 무늬다. 근대화와 투기바람의 세월을 거쳐 역도시화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사람보다 더 모진 시간을 겪은 땅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겼다. 두터운 책 세 권을 가득 채운 이야기는, 그래서 여느 기행 에세이처럼 가볍지 않다. 출판사는 이 책에 '국토인문지리지'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나의>
"데뷔할 때부터 나는 소설가라기보다는 문필가라고 스스로 생각했어. 창작도 중요하지만 현장의 사실이 더 중요하잖아. 젊을 땐 전태일 장례식 르포도 하고 그랬지. 답사와 르포가 거듭되니까 분단반도의 현실인 '국토'가 보이기 시작했어. 그 국토의 이야기로 시대를 평가해보고자 한 거지."
그 국토의 수려한 풍광도 이 책 속에서는 음풍농월의 대상이 아니다. 거제도의 동백꽃 소식, 남해 금산의 큰바위얼굴 속에서도 박씨는 '인간의 길'과 '시대의 풍경'을 읽어낸다. 지리와 문화와 경제를 아우르는 지리지를 통해, 그는 이 땅이 산업국토에서 벗어나 문화국토, 생태국토로 전환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역설한다.
길지않은 인터뷰 도중에도 박씨는 독일어 '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ㆍ시대정신)라는 말을 반복해 사용했다. "글쟁이는 자기 시대에 대한 증언의 의무가 있다"고 강조하던 이 노문필가의 어투는 작금의 현실을 얘기하면서 격해졌다. "미치광이들이 국토를 절단내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헛소리를 해대는데,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야. 백두대간을 파내고 아름다운 하천에 시멘트를 바르면 정말 나라가 잘 될까. 왜들 그렇게 어리석은 생각만 하는지… 박정희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암울한 것 같애."
●심사평/ "저자의 발품·독서 깊이 오롯이 축적"
저술(교양) 부문은 수준 높은 책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논의를 해야 했다. 하지만 서문에서 밝힌 주제의식을 본문에서 제대로 소화해 냈는가, 대중 독자에게 어울리는 진정한 교양이라는 이름에 값하는가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의 국토 나의 산하> 를 수상작으로 결정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나의>
이 책은 저자의 전작인 <국토와 민중> 의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컨셉트가 다소 진부하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가인 저자가 '국토기행문학'이라는 영역을 스스로 설정해 50여 년 동안이나 일관되게 지속해왔다는 점이 오히려 미덕으로 여겨졌다. <국토와 민중> 이후 사반세기 만에 새로운 시각으로 출간된 이 책은 그 오랜 세월만큼의 저자의 발품과 독서의 깊이가 축적되어 여행하는 자와 그 대상이 합일한 경지에 오른 수준이라는 데 이의가 없었다. 국토와> 국토와>
한기호ㆍ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유상호 기자
사진 신상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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