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원(願)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원을 이루기 위해 용맹정진하게 되는데,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대하고 대자대비한 서원도 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불교인이라면 생활의 구체적인 측면에서 원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는데 그것을 반성하고, 앞으로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겠다'고 원을 세우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원이란 나 자신과의 약속이자 맹세이며 내가 이루고자 하는 좋은 목표, 선한 목적인 것이다.
불교만 그러할까. 기독교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을 중시하는데 그 가운데 소망은 궁극적으로는 천국을 향한 소망, 하느님 나라를 향한 소망일 것이다. 그러한 소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소망이기도 하며, 결국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전이기도 하다. 역시 생활의 구체적인 측면에서 그것은 나 자신을 하느님 뜻에 합당하게 바꿔나가고 늘 거듭나고자 하는 구체적인 실천과 목표일 것이다.
유교도 예외는 아니다. 「논어」를 보면 공자를 '좀처럼 이루기 힘든 줄 알면서도 끝내 이루기 위해 실천하고야 마는 사람'(知其不可而爲之者)이라 평하는 대목이 나오고, 공자의 제자 증자는 '마땅히 행해야 할 임무는 무겁고 가야 할 길은 멀다'(任重而道遠) 말했으니, 이는 결국 굳건한 목표 의식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의 새로운 원과 소망과 임무를 세워야 할 시간이다. 많은 처세 실용서적을 읽어보면 목표는 구체적일 수록 좋다고 한다. 예컨대 '새해에는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것보다, '새해에는 어느 자선단체에 어느 정도 기부를 하겠다'는 목표가 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성도 높다. '새해에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것보다 '어떤 영어 교재로 하루에 얼마만큼 시간을 들여 어느 수준까지 공부하겠다'는 목표가 낫다.
이렇게 구체적인 목표를 정했으면 다음에 할 일은 그 목표를 늘 볼 수 있는 곳에 적어 놓는 것이다. 예컨대 일정 관리를 위해 자주 펼쳐보게 되는 다이어리나 수첩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적어 놓은 뒤에는 이른바 행동 계획, 즉 구체적인 목표를 실천하기 위한 세부적인 계획을 마련할 차례다. 그렇게 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새해의 삶에 관한 규모 있고 질서 있는 틀을 비록 계획상으로나마 잡을 수 있다.
올 한 해 우리 사회가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고 방향성 없이 표류했다면, 그 하나의 까닭을 바로 목표 설정의 실패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예컨대 세계적 경제 위기의 초기 단계에서 성장 목표치에 스스로 묶여 사실상 정책적 오류를 범한 정부 당국, 정체성과 진로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기만 했던 야당. 바라기로는, 새해부터라도 현실에 부합하면서도 현실을 보다 바람직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원과 소망과 임무를 세웠으면 한다. 개인의 원과 소망과 임무야 그것이 잘못되었거나 달성에 실패하면 개인의 실망으로 끝나지만, 공동체의 그것은 모든 이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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