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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08] <4> 해직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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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08] <4> 해직교사

입력
2008.12.2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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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같이 들어가요. 빨리요."

20일 오전 8시40분 서울 수유동 유현초등학교 정문 앞. 교사와 제자 사이에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선생님 손을 잡아 끌며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는 까까머리 남학생과 그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여러 눈길들.

설은주(28ㆍ여)씨는 이 학교 6학년 2반 담임교사다. 하지만 2년 가까이 날마다 드나들던 학교 문턱을 이제 넘을 수 없다. 서울시교육청은 16일 이 20대 여교사에게 '해임'이라는 무거운 처벌을 내렸다.

10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치르지 않고 체험학습을 떠난 13명의 학생들을 말리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나랏 녹(祿)을 먹는 공무원이 국가가 주관하는 시책에 반기를 들었으니 자격 박탈은 응당하다는 논리가 뒤따랐다. 여느 교사였다면 평생 씻지 못할 치욕이었을 터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해임 통보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고 했다. "애초에 11월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때부터 징계할 일이 아닌 것을 중징계 하겠다고 하니 해임이나 파면이 내려질 수도 있겠다고 예상했지요."

졸지에 여론의 중심에 서게 됐지만, 설씨는 흔히 말하는 '투사'가 아니다. 학창 시절 교사를 장래희망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포항에서 고교(포항제철고)를 나왔다. 대입 수험생이 으레 그렇듯 성적에 맞춰 서울에 있는 교대에 입학했고 선배들을 따라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제서야 교사의 꿈을 키웠다.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 지역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그 곳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막연하게나마 학교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 진짜 선생님이 됐을 때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공교육의 가치에 가장 가까운 울타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 앞에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 '전교조 출신 징계 교사'라는 호칭은 그래서 부담스럽다. 7년간 초등학교 교사로서 원래 해왔던, 아니 당연히 할 수 있었던 일들을 한 것 뿐인데 세상은 설씨를 대한민국 교육을 확 뜯어 고치려고 작심한 강성 교사로 여기는 눈치다.

'평가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설씨가 교직 생활에서 터득한 교훈이다. 그 동안 평가를 위해 문제를 만들 때 아이들의 사고(思考) 과정이 드러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또 학생들이 작성한 답안에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줬다. "발달 단계인 초등학생의 경우 선다형 문제처럼 일률적인 기준에 의해 평가하면 그 학생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를 전혀 알 수 없어요. 아이들이 점수로 드러나는 결과를 보며 느끼는 좌절감도 매우 큽니다."

이런 교육관을 실천해왔기에 일제고사 형식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앞두고 고민에 부닥쳤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현실적 요구도 외면할 수 없어 선택의 기회를 줬다. 설씨는 "자율 교육을 부르짖는 정부니 당연히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도 존중할 줄 알았다"고 했다.

설씨가 판단하는 학교 공동체의 소통 구조는 여전히 폭력적이다. "학교자율화 조치가 발표됐지만 각종 지침들은 끊임없이 내려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일제고사나 국제중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면 당국에 '이러이러한 현장의 의견도 있다'는 걸 알리는 게 학교의 역할인데 말을 안 들으면 내쳐 버리겠다는 식이에요." 해임 통지서를 받던 날도 그랬다.

밤 늦게 집으로 찾아온 학교 관계자들은 10개월을 부대꼈던 아이들과 짧은 작별인사를 나눌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도 지침이라고 했다.

"자율은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최근 역사교과서 논란만 봐도 아무리 명백한 오류가 있을지언정 정부가 나서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은 다양성을 부정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어요." 인터뷰 도중에도 설씨 휴대폰에서 문자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램프가 쉴새 없이 깜빡였다.

'힘 내시라'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격려성 문자가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행정사무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상담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아직도 그를 6학년 2반 29명 아이들의 책임자로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다.

중징계와 맞바꾼 선물은 따로 있다. 항상 숨죽인 채 학교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던 학부모들의 입에서 일제고사, 국제중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감 선거에 도통 관심도 없었던 분들이 요즘에는 교육감을 잘 뽑아야겠다는 얘기를 먼저 꺼냅니다. 자녀가 성장하는 법, 학교와 소통하는 법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거죠."

한 때 현실의 벽에 부딪쳐 대안학교에 관심을 두기도 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단다. "가능한 한 공교육 교사로 현장을 지킬 생각입니다. 제게 손을 내미는 剋? 학부모가 한 명이라도 존재하는 한 학교를 떠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 중징계 교사들 "징계 무효" 소청심사 청구

10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당시 학생들의 체험학습을 허락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해임ㆍ파면 처분을 받은 교사 7명이 24일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를 청구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교원소청심사위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를 알려줬을 뿐인데 시교육청은 일제고사 거부를 유도한 교사로 낙인 찍고 무리한 징계를 내렸다"며 "교원소청심사위는 사실 관계 및 법적 관계를 명확히 밝혀 교사들을 원직 복직시키고 징계를 무효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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