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의 검찰을 규정하는 ‘키워드’는 참여정부 사정수사다. 지난 3월 신성해운 감세로비 의혹 수사로 사실상 막을 올렸던 사정수사는 지난 2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의 구속기소로 절정을 맞았다. 향후 사정 수사는 어떤 경로를 밟게 될까. 법조계 안팎에서는 속도조절론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현재 각 검찰청에서 진행중인 참여정부 사정수사들은 대부분 별 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중앙지검 특수2부의 KTㆍKTF 수사는 당초 표적이 남중수 전 KT사장과 조영주 전 KTF 사장의 정ㆍ관계 로비 의혹이었다. 검찰도 실제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신상우 전 KBO 총재의 범죄 정황을 포착했지만 이들을 사법처리하지는 못하고 있다.
검찰은 조 전 사장이 이 전 수석과 진 전 장관 선거 캠프에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정황은 포착했으나 핵심 관련자 잠적 등으로 인해 이들을 처벌하지 못했다. 신 전 총재의 경우에도 조 전 사장으로부터 신용카드를 받아 수천만원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확인됐으나 대가성 여부 등 추가로 규명해야 할 문제가 있어 사법처리 여부를 단정하긴 어려운 단계다.
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의 부산자원 불법대출 사건 수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구속영장이 두 번이나 기각됐던 김평수 전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최근 구속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하지만 김 전 이사장 구속도 갖은 고생 끝에 겨우 이뤄낸 것이라 김 전 이사장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참여정부 인사들로까지 수사가 이뤄질지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다.
특수3부의 그랜드코리아레저(GKL) 수사는 조만간 전직 고위 관계자 등을 개인 비리 혐의로 기소하면서 마무리될 예정이다. 그러나 당초 수사 단초였던 ‘GKL이 카지노 운영 등 과정에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참여정부 인사들에게 정치자금으로 제공했다’는 내용의 첩보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결과다.
다른 검찰청에서 진행중인 사정 수사도 쾌속순항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서울서부지검의 프라임그룹 수사는 이주성 전 국세청장 구속 등 나름의 성과를 올렸지만 당초 표적으로 거명됐던 특정 참여정부 인사 등의 경우 별 다른 범죄 혐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의 애경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 수사에서도 채형석 애경 부회장 구속 이상의 성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수사 외적인 측면에서도 확전은 쉽지 않아 보인다. 내년 2월 정기 인사를 앞두고 있는 검찰로서는 인사 직전에 수사를 확대하기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경제위기도 고려해야 할 상황이다. 기업체로부터 정치인들이 불법 자금을 받는 것이 권력형 비리 사건의 전형인 만큼 사정 수사를 지속할 경우 기업이 어떤 식으로든 타격을 입게 돼 있다.
세종증권 수사로 인해 ‘소기의 목적’이 달성됐다는 측면도 간과하기 어렵다. 전 정권의 비리 부각이 사정 수사의 중요 목적 중 하나임을 감안하면 노건평씨의 구속기소는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한 결과물이다. 사정 수사 자체의 편향성 비판 등을 감안할 때 검찰로서는 추가 몰아치기를 했다가 역풍을 초래하는 것보다 지금 단계에서 속도조절에 돌입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ㆍ관계 로비의혹 수사 보류가 현 단계 사정 수사에 대한 검찰의 스탠스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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