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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39> 이민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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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39> 이민법 개정안

입력
2008.12.24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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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의 이민법 개정안 (Illegal Immigration Reform & Immigrant Responsibility Act of 1996) 은 아마도 이민쿼터 제도를 폐지한 이후 가장 크게 개혁된 이민법일 것이다. 쿼터 제도 폐지로 인종차별은 없어졌지만 대신 다른 부작용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였다.

예를 들면 외국의 노부모를 초청해 놓고 곧바로 무료식품권(푸드 스탬프)과 노인 주거비 등 정부의 혜택을 받아 챙기는 사람들의 수가 엄청나게 늘었다. 그 결과 미국에서 한 푼의 세금도 낸 적이 없는 이들을 왜 납세자들의 혈세로 도와야 하는지, 또 초청자인 자식들은 왜 이들을 책임질 수 없는지 등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결국 연방 의회에서 개정안이 나왔는데, 반이민적이고 과격한 개정안들은 주로 공화당 쪽에서 제안됐다. 한 예로 미국 영주를 위해 이민 온 외국인들은 적어도 5년 이상 감옥형을 받을 경우에만 본국으로 추방 당했던 것을, 백화점에서 물건을 슬쩍 호주머니에 감춰 넣는 소위 좀도둑 등 작은 범죄를 저질러도 추방할 수 있게 만들었다.

불법이민자 추방 외에 국경순찰도 강화하자는 목적에서 적어도 1만 명이 넘는 경비 요원을 채용하고 멕시코 국경에 철망을 치게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그야말로 광범위한 이민법 개정안도 있었다. 그 밖에도 수많은 개정안이 쏟아져 나왔지만 통과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 가운데 미국내 한인사회에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시민권이 없는 노인들이 정부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도록 하는 개정안이었다. 이 개정안은 한인사회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 분명했다. 한국 노인들 가운데 시민권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시민권을 받으려면 우선 영주권을 획득해야 하고, 이후 적어도 5년은 미국에 살면서 범죄기록이 전혀 없어야 한다. 또 시민권을 받기 전에 영어로 인터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를 전혀 모르는 노인들에겐 시민권 취득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공화당의 몇몇 의원들이 영주권만 있으면 정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또 다른 개정안을 상정했다.

영주권자도 투표권이 없는 것 외에는 세금을 내는 등 미국 시민과 다를 바 없고, 시민이 되기 위해 전제 조건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인 만큼 마땅히 영주권자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리였고, 다행히 이 개정안이 어렵게 통과됐다.

그런데 한인사회에는 마치 내가 영주권이 없는 한인 노인들의 혜택을 박탈하고 영주권이 있는 노인들만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법안을 낸 걸로 잘못 알려졌다. 이상하게도 그 당시 한인 언론은 나를 거만하다고 싫어했고, 기회만 있으면 나를 공격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이민법안을 기사화하면서 마치 나를 한인 노인들의 정부 혜택을 박탈한 한인 사회의 적인양 다뤘다. 또 누군가는 이런 기사들을 영어로 번역해 캘리포니아의 두 주요 신문인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오렌지 카운티의 레지스터 (Register)에 보냈다. 그러면 어김없이 그 이튿날 이 두 미국신문에 나의 얘기가 대서특필됐다.

헤드라인은 '김 의원은 한인사회에서마저 미움을 샀다'는 식이었다. 하도 답답해 "왜 내가 항상 공격을 당해야 하느냐"고 의회의 공화당 지도부에 물었더니 '최초의 한인계, 유일한 공화당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나는 곧 기삿거리가 되니 피할 방법은 없고 항상 조심하라는 충고가 돌아왔다.

그래서 가까운 교포들에게 어떻게 하면 한국 언론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지를 자문했더니 한 분이 내게 자기가 한인 기자들을 책임지고 맡겠다는 말을 했다. 들어보니 가끔 이들에게 금일봉을 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펄쩍 뛰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군사독재시대 얘기를 하는가.

만일 이런 일이 드러나면 나는 의원직을 당장 상실하게 된다. 결국 나는 계속되는 인신공격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말 많은 한인사회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결국 내 인기는 한동안 추락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후 영주권이 없어도 영주권을 일단 신청해 접수된 노인들은 영주권자와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개정안을 상정했다. 하지만 내 개정안은 정부 혜택의 자격을 얻기 위해 서둘러 영주권을 신청하는 부작용과 이에 따른 행정상 문제가 있다는 강력한 반론에 부딪혀 부결됐다. 그런데 이 것이 또 한인 언론에 와전돼 내가 영주권이 없으면 자격을 상실하는 개정안을 냈다가 부결됐다는 내용으로 대서특필됐다.

교포들의 편지와 전화가 쇄도했다. "당신은 한국 사람이 아니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당신은 부모도 없느냐"는 내용이 대부분 이었다. 나는 힘이 빠져 더 이상 변명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다. 그래서 그 많은 편지에 한 장의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 내 지역구의 백인들도 雌嗤?보내왔다.

영주권을 신청만 해도 혜택을 주자는 내 개정안에 압도적으로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당신은 미국을 대표하는 의원이냐, 아니면 이민 온 노인들이 정부 혜택을 받게 해 주는 것 만을 생각하는 이민자 대표냐. 어째서 우리가 일생 동안 벌어서 낸 연금을 이들에게 그냥 줘야 하는지 이유를 밝혀 달라"는 것이 백인들의 얘기였다.

그 와중에도 나는 불법이민을 강력히 반대하는 공화당의 보수파들과 합세하는 바람에 다행히 더 큰 재앙은 피했다. 나는 의사당에서 "나도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에 왔다. 합법적으로 왔다. 많은 어려운 절차를 걸쳐 이젠 미국 시민이 됐다. 철망을 넘어 불법으로 입국한 이민자들은 모두 체포해 자기 나라로 돌려 보내 나 같이 정식으로 수속을 밟아 오도록 안내해줘야 한다.

애당초 불법으로 입국한 사람들을, 즉 이미 미국의 법률을 어긴 범법자들을 합법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순을 반복해선 안 된다" 고 연설했다. 이후 공화당원들로부터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그 뒤로 나는 반이민자, 이민자들의 적으로 간주됐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신문은 나를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었다. 이 것이 나중에 내게 치명적인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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