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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다시, 길을 떠나다] <7> 연출가 오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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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다시, 길을 떠나다] <7> 연출가 오태석

입력
2008.12.24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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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배우들은 쉬는 게 일하는 것이고, 노는 게 연습이다. 푸진 4ㆍ4조 사설의 대사를 열심히 외는 사람, 촌로처럼 철퍼덕 앉아 쉬는 사람, 무대에 넓게 펼친 멍석에 분무기로 물을 뿌리며 먼지를 가라앉히는 사람. 극단 목화의 인간은 그렇게 거듭난다.

대표 오태석(68)씨의 표현법에 의하면 '삶의 결'을 새로이 새겨가는 것이다. 그 와중에 그는 무대 한쪽 구석 어딘가에서 연필을 들고 대본에 뭔가 열심히 써가며, 버전업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우리 연극에 어떤 존재일까? 답은 쉽고도 자명하다. 그가 없는 우리 연극판을 생각해 보면 된다. 한국의 연극판은 삽시간에 브로드웨이, 오프 브로드웨이,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의 아류가 돼 세계적 매니지먼트사에 맡겨질 것이다. 그것조차도 세계화의 당연한 일부라고 한다면 더 이상 할말없는 노릇이지만. 지금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 중인 그를 만났다.

­- 휴대폰은 왜 안 쓰나.

"하는 일이 집중력을 요하는 것이다. 거기에 방해될 것 같아서다. 나는 연습 아니면 공연이다. 서너 군데(학교, 극단, 극장, 집) 중 한 곳에 있으니 큰 문제 될 건 없다. 사실 번거로운 원고 청탁을 가장 자연스럽게 차단하는 방식이다. 덕분에 나는 밖에다 글 쓴 적이 없다."

- 당신이 연출한 '로미오와 줄리엣'과 '맥베스'에 대한 해외의 적극적 평가가 인상적이다. 런던이나 베이징에서의 공연평을 보면 '오태석 신드롬'이란 말이 왜 나왔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지금 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1995년 초연이다. 색깔과 움직임에 대해, 그 때 그 때 10번은 넘게 고쳤다. 우리의 어두운 근대사 때문에 젊은이들이 자기 폄하에 빠져, 쉬 서구화돼.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 힘과 멀어진 것은 어른들의 탓. 나는 거기 대해 미안한 마음이다.

인류를 괴롭히던 이데올로기적 장벽, 즉 DMZ를 아직 치우지 못한 것처럼. 개뼈다귀 같은 이데올로기 때문에 4ㆍ3 사태 같은 허무맹랑한 일 일으켰다. 구한말 이후 지금까지 똑 같은 형국 아닌가. 아니, 지금은 그 압력이 더 무섭다.

갈수록 튼튼해져 가는 걸 보면 지금까지 DMZ는 수혈을 받아 온 게 틀림없다. 미치겠어. 모두 다 돌대가리들이야. 어른들이 단추 잘못 끼워 저렇게 지내오다, 저 어린 로미오와 줄리엣이 4,000년 중에서 100년은 별 것 아니라고 우리 젊은이들 위로하는 것이다.

나의 '맥베스'는 현대 한국의 정치사를 은유한다. 멀쩡하던 인간이 돈키호테처럼 돼가는 모습을 완전히 우리 문법으로 처리하는 거다. 노름에서 왕이 되는 패가 나왔는데 안 할 놈이 어디 있겠나. 나는 유혹에 빠져드는 맥베스를, 원전은 안 다치고 희극으로 만들었다.

지금의 구어체, 시쳇말 쓰지 않고 4ㆍ4조 언어로 써서 아니리조 사설이 갖는 의외성. 즉흥성을 강조했다. 셰익스피어가 500년 전 글로브극장에서 대낮에 장 보는 사람들을 상대로 연극을 만들었으니 얼마나 재미있었겠나. 그 어떤 비극이라도 웃기며 갔다. 내가 셰익스피어의 본질은 farce(소극ㆍ笑劇)라고 보는 것은 그래서다."

- 요즘 관객들과의 소통을 위한 재해석인가.

"나는 재해석이 아니라, 우리 식으로 만든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시초다. 셰익스피어의 의도를 존중하며 하다 보니, 결국 우리 것이 돼 버렸다."

- 국립극단 예술감독 3년을 결산한다면.

"국립극단은 1970년대 이후 외부 연출가의 자격으로 죽 계속 일해왔으나, 예술감독으로 일하면서 연극의 구조에 대한 미학을 탐구해보겠다는 숙제를 어느 정도 풀었다. 가부키, 노, 베이징 오페라, 카타카리(인도의 전통 공연 양식) 등 동양 연극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목화라는 동인단체의 실험을 84세의 배우까지 있는 국립극단 차원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상적 형태를 찾아가는 도중에 그만둔 느낌이다. 내 문법을 몸에 익히게 해 시너지까지 못 갔다. 10년 정도는 함께 해야 가능한 일 같다. 앞으로 목화의 운영에 큰 도움을 줄 경험이었다. 어른들과 아이들을 연계시켜 작품을 만들어냈을 때를 가장 보람됐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 당신 고향 와룡리(臥龍里)의 순우리말을 따 만든 극장 아룽구지는 어떻게 되나.

"지하를 제외한 1~4층까지 모두 술집으로 변했다. 아룽구지를 예전처럼 운영하려면 두 배의 돈을 내라고 요구했다. 결국 대관을 해야 하는데 엄청난 돈이 들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이름도 바꿔 뮤지컬팀이 하고 있다. '심청이는 왜 인당수에 두 번 몸을 던졌나' '천년의 수인' '자전거' '앞산아 댕겨라 오금아 밀어라' 등은 그 극장이 있었기에 공연이 가능했다."

- 그 극장이 없어졌을 때의 심정은.

"멍석을 걷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서는 '내가 동인제 극단을 꾸려가는 유일한 사람이다. 내가 기 죽으면 다 죽는다'는 소리가 들렸다."

- 향후 극단 목화는 집 없는 천사가 되는 것인가.

"아니다. 아르코극장 뒤 6층짜리 건물 중 4층을 연습장으로 쓴다. 붉은악마들이 썼던 90평짜리 방이라 어떤 큰 작품도 가능하다."

- 극단 대표로서 돈 관리는 어떻게 하나.

"나는 '극단 하면서 절대 돈 남기지 말라'는 원칙을 지켜왔다. 돈이 있으면 분란이 일어나는 법이다. 항상 0을 유지하므로 한 번도 분란이 없었다. 그러나 아룽구지를 운영하면서는 다음을 위한 자금은 항상 놔뒀다. 외부 도움이 없기는 지금도 마찬가지. 손 벌리지 말자는 광대정신이 곧 나다. 그러나 누군가 극장 도움을 줄 것 같은 마음이다. 막연하지만 될 것이다."

- '오태석 사단'이란 말이 생겼을 만큼 극단 목화는 당신의 카리스마 아래 움직이는 공동체라는 인식이 강하다. 배우들이 극단에서 악착같이 작업하다, 영화 등 외부로 가서 인상깊은 연기를 펼쳐 보인다. 그러나 목화의 배우라는 자존심만으로 현실적 어려움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을 텐데.

"주연급 배우는 작품당 100만원 받는다. 그들 중 유명세나 돈을 바라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실생활에 부딪칠 수 있는 용기, 자신감을 갖는다는 의미가 크다. 될성부른 아이들은 차, 이성, 데이트 등 누리고 싶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버릴 줄 안다. 지하철 끊길 무렵에야 연습 끝나니 데이트는 꿈도 못 꾼다. 연극 관련 교수들이 아이들 교육시켜달라며 보내는데, 오후 2~11시의 연습을 못 이겨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다 빠져나가기 일쑤다."

- 계속 떠돌이 극단으로 남을 것인가.

"아룽구지를 처분한 돈 등을 바탕으로 내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기업 같은 데 손 벌리는 건 생리적으로 못 한다. 일본 가서 보니 영업 뒤의 목욕탕, 폐교회, 폐창고 같은 데서도 연습하더라."

-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1976년 예전 학생들을 데리고 명동 창고극장에서 했던 '춘풍의 처'다."

●"아동극은 새 출발점"

시쳇말로 하자면, 아동극은 오태석씨의 새로운 블루 오션이다. 20일까지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한국적 볼거리로 가득찬 현장이었다.

아동극보다 더 재미있는 무대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요즘 어린 관객들은 공연 시작 두어 시간 전부터 어른들의 손을 잡고 기다린다.

무대 중앙에는 커다란 멍석이 깔리고 뒤에는 현무도 그림, 전통 칠교놀이를 형상화한 그림 등이 내걸렸다. 옛 이탈리아가 천년을 이어 온 '약속'의 공간으로 재현된 것이다. 공연 직전, 배우들은 객석에 들어가 먹을 것도 준다. 공연 중 어린이 관객들은 어른들보다 빨리 웃고 박수 치며, 극에 빠져든다.

2002년의 '내 사랑 DMZ'는 오씨의 아동극에 대한 본격 출발을 알리는 자리였다. 어른들의 전쟁놀음으로 인적이 끊긴 DMZ. 그곳이 생물의 낙원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결과였다. 무대 밖에도 오씨의 상징어법들이 그득한 극장에서 아이들은 노루와 토끼의 이야기에 빨려들어갔다.

아시테지(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 김우옥 이사장이 2002년 한국을 주빈으로 치러지는 행사를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해오면서, 그는 잊고 있던 꿈을 기억해냈다.

그는 "페스탈로치처럼 되고픈 평소의 마음이 항상 있었으나, 가장 섬세한 영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작업인지 알므로 선뜻 나서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우 등 전래동화의 친근한 주인공이 사라졌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바로 그 때, 어린이의 판타지가 재생할 수 있는 곳이 DMZ라는 생각이 들었죠."

오씨는 "실제 공연을 해 보니, '라이언 킹'보다 더 재미있는 아동극을 만들 자신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연극 어법의 근간은 한국 고유의 생략과 비약"이라며 "그게 바로 아이들 정서"라고 덧붙였다.

삼국유사 등 한국적 판타지가 충만한 텍스트를 기반으로 해 어린이들에게 어울리는 이야기를 발굴하는 일을 급선무로 꼽았다. 23~28일 '맥베스'가 뒤를 잇는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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