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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문제집 공부 그만하도록

입력
2008.12.24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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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늘 마주치는 여고생들. 밝고 활기차야 할 그들이지만 얼굴 표정은 어둡고 지쳐 있다. 밤 늦게까지 학원 수업에, 시험 준비에 심신이 시달린 탓이다. 친구들과 나누는 인사도 잠시, 시선은 어느새 손에 든 문제집으로 향한다. 걸으면서도 문제를 푸는 아이들…. 우리 아이들은 '점수의 노예'가 돼버렸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은 그들의 인생을 좌우하는 숫자다. 성적표를 받은 순간부터 아이들은 점수가 짜놓은 그물에 걸리고 만다.

그 점수로 대학과 전공을 택하고, 그 대학과 전공은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 직업과 소득과 배우자를 얻는 간판이 된다. 그러니 싫든 좋든 아이들은 점수 따기에 매달린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집에서도 1점을 더 얻기 위한 공부만 한다. 점수 따기 공부에는 문제집이 그만이다. 모든 문제집의 모든 문제를 풀어 보는 게 성적과 등수를 올리는 방법이라는 말은 수험생들에게 금과옥조로 통한다. 공부가 재미있을 리 없다. 흥미, 재미, 적성, 소질 따위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잠재력 창의력 죽이는 교육

공부에 대한 흥미 저하는 조사결과가 증명한다. 3년마다 실시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6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결과, 우리 고1 학생들의 과학 과목 흥미도는 57개국 평균을 훨씬 밑돌았다. 수학을 분석한 2003년의 경우, 성적은 상위권이었지만 흥미도나 학습 동기는 전체 41개국 중 각각 31위, 38위였다. 최근 국제 교육성취도 평가협회(IEA)의 연구결과에서도 우리 학생들의 수학ㆍ과학 과목에 대한 자신감이나 즐거움에 관한 지수는 모두 하위권이었다.

교육 전문가, 심지어 국가 교육연구기관이 분석한 원인은 한 가지. 아이들의 잠재력, 창의력 개발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은 채 시험 성적 높이기에만 골몰하는 주입식ㆍ암기식 교육, 오직 대학 입학을 위해 선행 학습과 문제집 풀기에만 열중하게 하는 입시 위주 교육이 주범이다. 그런 교육체계를 바꾸지 않은 채 문제집 공부만 강요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 육성 운운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올해 초 언론들은 앞 다퉈 유럽의 교육개혁 현장을 다뤘다. 그 중 단연 돋보인 나라는 2000ㆍ2003ㆍ2006년 PISA에서 잇따라 최고 성적을 낸 핀란드다. 핀란드 교육은 수월성과 평등성을 모두 달성한 보기 드문 경우다. 성적표에서 등수를 없애는 대신 스스로 공부하게 하고, 공부 잘 하는 아이와 처지는 아이가 한 교실에서 각자 수준에 맞게 공부하도록 하는 핀란드식 교육은 가장 공부 못하는 학교와 가장 공부 잘하는 학교의 차이(학교간 학업성취도 편차)를 거의 없애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 학교, 낙도 학교의 성적이 별반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다.

핀란드식 교육을 도입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점수ㆍ입시 위주의 교육을 시키지 않고도 얼마든지 학습동기를 고취하고 학업성취도를 높여 '상향 평준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을 핀란드식 교육에서 찾아보자는 이야기다.

정부 교육정책의 핵심인 '경쟁과 효율'이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가치인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처럼 아이들을 점수로 줄 세우는 식의 교육정책은 부작용이 크고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초등학생까지 일제고사를 보게 하는 교육정책으로는 창의력과 잠재력을 발굴ㆍ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개혁을 진행 중인 선진국들을 따라잡지 못한다.

일관성 있게 추진할 정책을

내년 한 해 동안 이명박 정부는 이념적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어떤 교육이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지, 우리에게 어떤 교육시스템이 어울리는지,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와 재미를 느끼게 하고 창의력과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교육은 어떤 것인지 등을 연구하고 논의에 부쳐야 한다.

그리고 수 차례의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수립한 장기 교육계획을 꾸준히 추진한 핀란드처럼 일관성 있게 실천할 수 있는 교육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은, 또 그 아이의 아이들은 미래에도 여전히 문제집만 들여다 볼 것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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