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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망상(妄想)의 정치

입력
2008.12.2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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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나라당에 과반의석을 몰아준 국민 여러분의 뜻을 왜 모르겠습니까. 우리한테 실망해서 반사적으로 표를 던진 거지요. 다만 우리한테도 적지 않은 의석을 준 것은 거대여당의 일방독주는 막아달라는 뜻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가 나선 겁니다. 우리가 누굽니까.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고, 도덕적으로 그릇된 적이 없었습니다. 집권하고 있을 때 잠시 경험 부족으로 비틀거리긴 했지만 적어도 야당일 때는 늘 옳지 않았습니까.

저들은 누굽니까.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군사독재의 잔당이고, 부도덕하게 배를 불린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자는 사람들 아닙니까.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짓밟고 억누르자는 마당에 어떻게 우리가 정의의 철퇴를 내려 놓겠습니까. 저들의 사탕발림에 현혹된 다수 서민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몸을 던져 싸우겠습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얼굴에서 특유의 웃음이 사라졌다. 원혜영 원내대표의 말투도 한결 전투적으로 바뀌었다. 원로들의 타협 주장은 강경파의 목소리에 묻혔고 "우리는 저들과 DNA가 다르다"는 인식만 팽배하다.

스스로 너무 옳은 여야

<#2. 국민 여러분, 지난해 대선과 올해 총선에서 저희에게 표를 몰아주신 뜻을 받들어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누굽니까. 산업화와 경제발전으로 보릿고개를 없애지 않았습니까. 일을 하려다 보니 여러분의 자유와 권리를 잠시 제약한 적은 있지만 결국 더 많은 행복과 물질적 풍요를 안겨 드렸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어땠습니까. 사사건건 국가 발전을 가로막고, 틈만 나면 북한과 내통하려던 세력입니다. 그들이 정말 국민을 위해 한 일이 있습니까. 그런 저들이 국민 여러분에 등을 돌리고 생떼를 쓰는 것을 언제까지 참고 견뎌야 합니까. 우리는 참을 수 있지만 여러분의 미래와 행복이 시시각각 사라져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다시는 생떼를 쓰지 못하도록 밀어붙이겠습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다시 폭탄주를 돌리기 시작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연말까지 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한 '속도'가 유일한 시대정신인 것처럼 한나라당에 침투하고 있다.

정신병리인 '망상'의 사전적 정의는 '비합리적, 수정불능의 확신'이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대표격이 과대망상이다. 현실상황에서 일탈해 스스로를 과대 평가하거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지위나 재산, 능력이 있다고 믿는 심리상태로 흔히 조증(燥症)과 결합된다. 거꾸로 자신이 늘 타인으로부터 부당한 침해를 받고 있다고 여기며, 모든 실패의 책임을 타자에게 돌리려는 비합리적 심리상태가 피해망상이다. 울증(鬱症)과 이어지기 쉽다.

과대망상과 피해망상은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나타나기 일쑤다. 기본축이 같기 때문이다. 정상적 인식능력을 가진 사람은 세상이 자신을 축으로 돌지 않는다는 객관적 사실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존재의미를 구분한다. 파스칼은 인간은 갈대처럼 약한 존재지만, 그 약함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우주보다 고귀하다고 설파했다. 반면 세상이 자신을 축으로 돈다는 망상에 젖으면, 절대 그렇지 않은 현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인식 부조화에 빠진다. 의원 개개인이나 정당과 같은 조직의 의식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국민 걱정 커져

여야가 보란 듯이 펼치는 망상의 정치에서는 방향정위(方向定位), 또는 지남력(指南力) 상실도 눈에 띈다. 자신의 상황을 시간ㆍ공간적으로 똑바로 파악할 능력을 잃어버린 듯, 세상의 빠른 변화로 현실의 시ㆍ공간 좌표축이 빠르게 이동하는데도 의식은 과거의 좌표에 못 박혀 있다. 성인도 시속(時俗)을 따른다는데 현실정치야 더 말할 게 없다.

이대로라면 여야의 망상은 날로 도를 더할 뿐이다. 그것이 부디 더 큰 광기의 전조가 아니기를 빌어보지만,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먹고 살기 어렵다고 국민이 다른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 게 아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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