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법정 밖으로, 세상 속으로 나가도 좋습니다."
19일 오전 서울고법 302호 법정. 재판장 박형남 부장판사가 선고를 끝내고 피고인석에 앉은 배경옥(70)씨에게 이례적으로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넸다. 배씨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기쁨보다 간첩으로 몰려 갖은 고문을 당하고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던 한 맺힌 세월이 먼저 떠올랐다.
배씨는 1960년대 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중간첩' 이수근의 처조카. 이씨는 67년 3월 2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으로 판문점을 통해 귀순했으나 남한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69년 1월 중앙정보부의 감시를 피해 중립국에서 남북한을 동시 비판하는 책을 쓰려고 캄보디아로 향하던 중, 그는 베트남 사이공 공항에서 중정 요원들에게 체포돼 한국으로 압송됐다. 베트남에서 기술자로 일하던 배씨도 함께 붙잡혔다.
중정은 "이씨가 남한의 기밀을 수집한 후 배씨를 통해 북한으로 보내려다가 발각되자 함께 위조여권을 만들어 탈출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이씨를 위장 귀순한 이중간첩으로, 배씨는 이씨의 간첩활동을 도운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두 사람 모두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이씨는 항소를 포기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배씨는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21년간 복역하다 89년 12월 만기출소했다.
배씨는 "중정에 끌려가 숱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하고 갈비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구타를 당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자백을 강요당했다"고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배씨의 억울한 누명은 지난해 1월 1차적으로 풀렸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수근 사건을 중정의 조작으로 결론내렸기 때문이다. 배씨는 바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재판부는 이날 40년 만에 배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씨를 위장 간첩으로 인정할 증거가 없고, 따라서 배씨가 간첩행위를 방조했다는 점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장기간 불법 구금 상태에서 고문을 이기지 못해 자백한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 검찰은 배씨가 진술을 번복함에도 중정 수사관에게 자리를 비워주는 등 묵인했으며, 법원도 증거재판주의의 원칙을 구현하지 못해 인권의 마지막 지킴이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배씨는 그러나 그에게 육체적 고통을 가했을 뿐 아니라 가족까지 해체시킨 국가권력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치를 떨었다.
옥살이 기간 건축설계사로 활동하던 그의 아들은 '간첩의 자식'으로 지목돼 집중 감시를 받으며 고통을 당했고, 결국 배씨가 출소한 뒤 8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배씨는 선고가 끝난 뒤 "기뻐야 하는데… 이제야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라 그런지 공허하고 서글픈 느낌이 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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