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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츠증권 파생운용본부 75개월 연승 비결은? "심팔기이…딜러의 感이 가장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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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츠증권 파생운용본부 75개월 연승 비결은? "심팔기이…딜러의 感이 가장 중요"

입력
2008.12.2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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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화장실 두 번째 칸에서 큰일을 봤더니 역시 마이너스야." 파생상품 딜러 A는 '죽어도' 회사 화장실 첫째 칸을 고집한다. 급한 나머지 다른 칸에서 '대사'를 치르면 그날 거래는 꼭 죽을 쑨다는 징크스 탓이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건다고 나무라도 상관 없다. 파생상품 딜러에게 각자의 징크스는 누가 뭐래도 그날그날 수익을 결정하는 금과옥조란다.

#. "아싸, 아침에 똥차를 3대나 봤어요." 출근길에 분뇨처리 트럭을 보면 유독 거래 운이 좋다는 B 딜러의 환호에 본부장이 훈계를 한다. "금융공학으로 승부하는 요즘 시대에 아직도 징크스에 매여있냐, 좀 깨라!" 듣고있던 여성 딜러가 카운터펀치를 날린다. "본부장님, 오늘 만기 타이 매셨네요." 선물ㆍ옵션 만기일에만 지성으로 매는 붉은 넥타이를 두고 한 말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20년차 본부장도 징크스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일반인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복잡하고 어려워 도통 감이 안 잡히는 금융공학의 총아, 파생상품 분야에 하찮은 징크스 따위라니.' 하지만 웬걸, 그들은 '전무후무한 무적의 75개월 연승'을 거둔 '명문 구단'이다.

메리츠증권 파생운용본부는 처참히 무너져 내린 올해 증시, 그래서 다른 증권사는 구조조정 1순위로 지목했던 파생상품 분야에서 발군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팀이 꾸려진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85억~340억원의 수익을 냈고, 침체기였던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정말 징크스에 대한 믿음이 영광의 밑거름일까. 윤종원(41) 본부장(상무)은 "흔히 '심칠기삼'(심리 7, 기술적 분석 3이 시장 좌우)이라고 하는데, 실은 심리가 8할이라고 보기 때문에 기술적 분석보다 징크스로 상징되는 딜러의 감(感)이 중요한 건 사실"이라고 했다.

더구나 파생상품 딜러는 고독한 전사다. 장이 열리는 내내(6시간) 각종 데이터와 뉴스, 거래내역이 어지러운 5~7개의 모니터에 둘러싸여 실체가 없는 시장과 피 말리는 전투를 벌인다. 순식간에 수천만원이 오가는 거래가 종료되기 때문에 1초도 허비할 수 없다. '초' 단위로 감정 없는 모니터를 향해 욕하고 환호하고, 울고 웃다 보니 심리상태가 극도로 예민하다. 8년차 김철우(36) 차장은 "(징크스는) 자기관리와 심리적 안정 수단"이라고 했다.

사기와 더불어 필승전법도 갖춰야 한다. 무릇 원칙이란 만들긴 쉬워도 지키긴 어려운 법,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게 제1의 규칙이다. '소탐대득'(小貪大得)도 신봉한다. "하루 잘 벌고 다음날 망가지면 겨우 본전인데, 푼돈이라도 무시하지않고 조금씩 벌어들이다 보면 한달, 1년이라는 큰 시간 단위에선 결국 성과"(윤 본부장)이다.

자율은 보장하되 경쟁심은 유도한다. 사람대신 시장을 상대하는 터라 파생상품 딜러들은 동료들의 움직임에도 민감하다. 메리츠증권은 아예 딜러들의 성적표를 매일 공개한다. 비공개 논의도 있었지만 당사자인 딜러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정우길(40) 팀장은 "무정해 보이지만 승부사기질이 다분한 딜러들에겐 오히려 긍정적 자극이 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실전에서 잔뼈가 굵은 리더십도 빼놓을 수 없다. 팀의 사령탑인 윤 본부장은 국내 파생상품 딜러 1세대, 선수시절 '144연승'(일 수익률 플러스)의 기록을 세운 스타다. 그의 경험과 철학, 체계적인 노하우는 고스란히 팀에 전수되고 있다. '3연패(3일 연속 마이너스) 하면 쉬게 한다' '그날 수익의 20~30%를 잃으면 매매를 중단시킨다' '아무리 장이 좋아도 풀베팅(몰빵)하지 말라' 등이다.

윤 본부장은 늘 딜러들의 거래 활동을 눈여겨본다. 가끔 헤매는 딜러의 강판을 위해 마운드에도 나선다. 쉬기를 거부하는 콧대 높고 고집 센 딜러들에겐 선동렬 삼성 감독의 말을 인용하면 효과가 있단다. "나만큼 야구(거래) 잘해?" 그는 "파생상품 리더의 역할은 단순 관리를 넘어 딜러가 판단력 결단력 순발력의 3박자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운용의 묘를 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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